답목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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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을 이용하여 베를 짜는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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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력을 이용하여 베를 짜는 베틀.
내용

역직기(力織機)가 발명되기 이전에 베틀에 달린 답목을 사람이 발로 밟아 동력을 일으켜 베를 짜는 수직기(手織機)의 일종이다. 이는 베틀에 달린 발끈[足繩]을 당겼다 놓았다 하여 개구운동을 하는 포기(布機)와는 원리적으로 다르다.

답목은 고대직기의 구분상 고기(高機)에 부착되어 개구운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고기는 중국의 화기(花機)도 포함되지만, 답목직기의 기본개념은 화기가 아닌 직기를 가리킨다.

답목직기는 경권(經卷)과 포권(布卷)이 기대에 고정되어 있으며, 종광(綜絖)은 2매 이상이고 개구운동은 답목을 밟는 데서 일어나며 북[梭]은 작은 배와 같은 모양이며, 바디침운동[緯打運動]은 바디에 의해서만 하고 감기운동[捲取運動]과 송출운동(送出運動) 장치가 되어 있다.

그러나 답목직기는 포기의 발전형이 아니며, 섬유의 소재별 용도로서 무기대직기에서 직접적으로 발전되어, 특히 견직물의 생산고를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 직기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이농경문화권(犂農耕文化圈)에 분포되어 사용되어 왔는데, 특히 동아시아권인 우리 나라·중국·일본에서는 견직물 제직용과 면직물 제직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인피섬유류직물(靭皮纖維類織物)을 짜는 데는 쓰이지 않았다.

답목직기의 형태는 중국의 산둥(山東)과 장쑤(江蘇)지역에서 출토된 화상석(畫象石)의 직기도(織機圖)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직기도의 답목은 장단(長短) 두 쪽으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답목을 ‘각답판(脚踏板)’이라고도 하였으며 상고시대는 ‘섭(躡)’이라고도 하였다.

≪서경잡기 西京雜記≫에서 포도금(蒲桃錦)과 산화릉(散花綾)을 짜는 데 사용된 섭의 수가 120개였다는 기록이 있다. ‘섭(鑷)’·‘섭(躡)’·‘답(踏)’은 상통되는 것이며, 상당히 많은 수의 답목이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고고학자 하정(夏鼎)은 이것이 제화선속(提花線束)을 끼워 그것을 올리는 도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삼국지≫ 방기전·두기전과 배송 주(裴松注)에서 전현(傳玄)이 쓴 마균전(馬鈞傳)에 50선(線)·50섭(躡)·60종(綜)·60섭의 직기에 대한 기술이 있어, 답목의 수효가 두 개 이상 많은 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답목직기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출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열자 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섭에 해당되는 기술이 있다고 하여 전한(前漢) 때 발생설도 있으나, 후한(後漢)의 화상석의 직기도를 실증자료로 하여 전한 때부터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후한 때 비로소 널리 사용되었다고 본다.

우리 나라의 고대 기직문화(機織文化)는 다른 모든 문화의 양상과 같이 인도·동남아시아·민남(閩南) 문화지역과 섬세한 포직물제직의 문화였으며, 북중국 즉, 은문화(殷文化)와 한문화(漢文化) 지역과 화려한 견직물제직 포괄지역이었던 우수한 직물제직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각종 직물제직에 사용되었던 직기의 사용도 남방적이며 북방적인 양쪽의 형태를 아울러 갖추어 발전하였다고 본다.

오늘날까지 농가의 수직기로서 사용되고 있는 포기가 사상형 기대(斜上型機臺)이며, 포권을 허리에 묶는 형식이 화북지방(華北地方)에는 없는 점으로 미루어보아도 알 수 있으며, 이 직기가 일본의 고분시대(古墳時代)에 일본에 전해져 일본 기직문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일본의 고대직물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또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고대 기직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 된다. 우리 나라의 삼국시대 일본에 명주와 기직기술이 전해져서 비로소 견직물 문화가 싹튼 사실이 일본의 ≪고사기≫·≪서기≫ 등 고대사서에 기록된 점은 일찍이 우리 나라가 견직기를 사용한 간접적 실증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천공개물(天工開物)』
「我國蠶桑絲紬的硏究」(夏鼎, 『考古』, 19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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