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호위무관 출신 이석문 관련 주택.
내용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출입하는 서울 사대부집 방식이 도입되었다. 대문 안 바로 우측에 낮은 담이 있고 작은 일각문이 있다. 북비문(北扉門)이라 편액하였다. 문 안에 북향한 4칸 건물이 있다. 방 2칸 대청 2칸의 단순한 건물이다.
대문 안 좌측에 T형 평면의 사랑채가 있다. {{#191자형에 반 칸 넓이의 측간이 부설되면서 생긴 변형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몸체에 대문쪽으로 돌출한 간방이 이어진 구조이다. 돌출 부분이 작은 사랑방이며 높은 주초석을 세워 내루(內樓)로 조성하였다.
몸체 중심에 큰 사랑방 2칸이 있는데 앞퇴가 있어 대청으로 통하게 되었고 방 뒤로는 반 칸 넓이 골방이 2칸 계속되어 있다. 큰 방과 작은 방과의 사이에 함실(불길이 그냥 곧게 고래로 들어가게 된 아구이)이 있다. 큰 방 옆 대청은 정면 1칸 측면 2칸 넓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안행랑채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향 우측부터 부엌 간 반(間半),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너방 1칸 순이고 앞퇴가 전 칸에 계속되었다.
방에는 뒤쪽 처마 아래로 고미다락이 있고 대청 뒤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었다. 홑처마 맞배 기와 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 반 통에 앞퇴가 개방된 가묘형이다.
참고문헌
- 『성주한개마을』(연세대학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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