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변 이후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추모하며 북향으로 문을 내고 평생 은거하던 집이다.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출입하는 서울 사대부집 방식이 도입되었다. 대문 안 바로 우측에 낮은 담이 있고 작은 일각문이 있다. 북비문(北扉門)이라 편액하였다. 문 안에 북향한 4칸 건물이 있다. 방 2칸 대청 2칸의 단순한 건물이다.
대문 안 좌측에 T형 평면의 사랑채가 있다. {{#191}}자형에 반 칸 넓이의 측간이 부설되면서 생긴 변형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몸체에 대문쪽으로 돌출한 간방이 이어진 구조이다. 돌출 부분이 작은 사랑방이며 높은 주초석을 세워 내루(內樓)로 조성하였다.
몸체 중심에 큰 사랑방 2칸이 있는데 앞퇴가 있어 대청으로 통하게 되었고 방 뒤로는 반 칸 넓이 골방이 2칸 계속되어 있다. 큰 방과 작은 방과의 사이에 함실(불길이 그냥 곧게 고래로 들어가게 된 아구이)이 있다. 큰 방 옆 대청은 정면 1칸 측면 2칸 넓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안행랑채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향 우측부터 부엌 간 반(間半),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너방 1칸 순이고 앞퇴가 전 칸에 계속되었다.
방에는 뒤쪽 처마 아래로 고미다락이 있고 대청 뒤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었다. 홑처마 맞배 기와 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 반 통에 앞퇴가 개방된 가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