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11년 이전희(李銓熙)가 창건한 집이다. 1930년에 가묘와 별당을 증축하였다.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가 현존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살림집이면서도 마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맥을 재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 보수성을 지녔는지를 일깨워 주는 한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집의 특성이다.
낮고 직박한 대문간채의 평문이 서편끝간에 있다. 4칸 규모인데 나머지는 헛간이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에 별당채가 있다. 중문은 별당채 지나면서 안행랑채와 이룬 골목안에 있다. 이런 구성도 주목거리이다.
안채는 중문간. 행랑채와 곳간채가 따로 자리하고 있으나 윤곽은 트인 ㅁ자형이다. ┌형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간반통이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꺾이면서 건너방의 아랫칸 이어 부엌 처럼 꾸민 아궁이 있는 공간, 그리고 아랫방이 있다.
부엌에는 다락이. 건넌방과 아랫방 사이 아궁이 중간도 다락 구조이나 벽체 없이 개방한 것이 특색이다. 집의 구조는 듬실하다. 숙련된 목수가 집 지으면서 부잣집 답게 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5량집이며, 앞퇴가 있다. 사랑채는 안채 서편에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ㅡ자형 겹집이다. 10칸 중 대청 4칸과 앞퇴1칸 규모가 대청이고 나머지가 방이다.
사랑채 북쪽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보편적인 건물이고 별당채는 세 건물로 일곽이 이루어져 있다. 이 집의 측간들은 따로 설치되지 않고 곳간채에 함께 시설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점은 종래의 내외측간이 따로 만들어지던 시류에서 벗어나 실내로 끌어들인 시대적 감각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의 흐름이 전혀 도외시 될 수 없었다는 의미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