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태고종에 속했다가 한국불교조계종으로 소속을 변경하였다. 670년(문무왕 10)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범굴사(梵窟寺)’라 하였고, 1375년(우왕 1) 나옹(懶翁)이 중창한 뒤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750년(영조 26) 방지성(方智性)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으며, 뒤에 운악산의 승려 전령(展翎)이 와서 확장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불탄 뒤 폐사가 되었으며, 1912년 정념(正念)이 중건하였고, 1928년 백용성(白龍城)의 제자 보광(寶光)이 대웅전과 나한전(羅漢殿) · 요사채 등을 건립한 뒤 대성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6년 보광이 중성전(衆聖殿)을 중건하였고, 1942년 극락전을 중수하였으나, 6·25 때 다시 소실되었다. 1954년 주지 석하(奭河)와 신도 광명심(光明心)이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고, 1968년 삼성각(三聖閣)을, 1979년 주지 태웅(泰雄)이 중건하였다. 2006년 대성암이란 명칭을 범굴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대성전(大聖殿)과 삼성각 · 종각 · 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만한 문화유산은 없다. 이 절의 법당 뒤에 있는 바위 천장에서는 창건 당시 천공미(天供米)가 나와 이를 먹으면서 수도하였는데, 시자(侍者)가 많은 쌀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구멍을 넓히자 타버린 쌀과 뜨물이 7일 동안 흘러내린 뒤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