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25일 조선기독청년회(YMCA)회관에서 40여 명의 유단자가 모여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같은 해 10월 조선유도연맹을 결성하였다. 1950년 11월 대한유도회로 개칭하였다. 1953년 6월 대한유도회의 중견 유도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서울 중구 소공동에 대한유도회 중앙도장에 정원 100명의 단과 2년제의 대한유도학교를 설립하였다. 대한유도학교는 1956년 4년제로 학제변경하였다.
1964년 1월에는 재단법인에서 학교법인으로 조직변경인가를 받아 학교법인 변경과 동시 사실상 대한유도회와 분리되었다. 그 후 대한유도학교는 1970년 4월서울 성동구 풍납동으로 이전하였고 1985년 2월에는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으로 이전하였고, 1990년 10월에는 대한체육과학대학으로 개편되었으며 1992년 4월에는 용인대학교로 교명을 변경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한국유도원이 설립되었다. 한국유도원의 전신은 1918년 9월 일제가 일본유도의 발달보급과 국민의 심신단련제공을 목적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이왕직(李王職) 소유의 대지에 재단법인 고도관조선지부(講道館朝鮮支部)가 설립되었다. 광복이 되자 재단법인 조선연무관이 사용하였으나 6·25전쟁 이후 귀속 재산문제로 1956년 2월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으로 발족되었다.
1972년 11월 한국유도원은 중앙도장의 대지가 문화재관리국 소유로 부지사용료 체납이 심각하여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소공동 중앙도장을 애경유지에 인계하고 연고권으로 받은 4638만2000원과 국고보조 2000만 원으로 여의도에 한국유도회관을 착공하여 1974년 12월 한국 최초의 유도인에 의한 중앙도장이 마련되었다.
한국유도원은 1995년 7월에 대지 605평에 지하6층 지상8층의 연건평 5,482평의 여의도스포츠센터를 완공하였다. 건축비용은 스포츠레저센터 2,228명의 정회원의 회비로 충당하였다.
대한유도회는 산하에 한국대학유도연맹과 한국 중·고연맹이 있으며 자체 국내대회 9회와 2개 연맹대회 4회 등을 치르며, 9회에 이르는 각종 국제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하고 동·하계훈련과 해외전지훈련 등 선수강화훈련에 힘쓰고 있으며, 연간 4회에 걸친 승단심사에서 초단에서 9단까지 약 2,000여 명이 승단하고 있다.
국내대회는 회장기쟁탈전국유도대회, 교보생명컵 전국초등학교유도대회, 전국청소년 유도선수권대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용인대총장기 전국남·녀고등학교유도대회, 우리 나라 체급별 최강을 가리는 전국 남녀체급별 개인유도선수권대회, 한국마사회장배 전국유도대회, 전국체육대회, 대통령배 전국유도대회 등을 개최한다.
국제대회는 4년마다 개최되는 하계올림픽대회, 2년마다 개최되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및 세계청소년대회, 국제여자유도대회, 세계대학생유도선수권대회, 국제고교유도대회, 월드컵단체국제유도대회, 세계의 각 도시나 기업체가 주최하는 국제대회인 일본의 쇼리카컵 국제유도대회에 체급당 4명씩 출전시키며, 파리오픈유도대회 또한 선수 양성을 위해 4명씩의 선수를 체급별로 출전시킨다.
이탈리아의 기도시에니컵국제유도대회, 토레토리컵국제유도대회는 2, 3명의 선수를 체급별로 출전시킨다. 20세 이하의 청소년을 위한 월드유스게임, 4년마다 아시안게임,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등에 선수단을 파견하여 한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1998년 말 현재 전국 16개 시도에 4,500명의 등록선수와 9단 29명, 8단 133명을 포함한 20만 명의 유단자가 전국 562개의 수련도장에서 10여만 명과 수련하고 있으며, 국내 1급심판이 420명, 국제심판 A급 16명, B급이 9명 국제심판 최다보유국으로 국제유도연맹회장국으로서 연간 12억여 원의 예산으로 유도를 통한 국제문화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