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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경기자가 백색과 청색의 도복을 입고 메치기 · 굳히기 등의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패를 겨루는 맨손무술경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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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2명의 경기자가 백색과 청색의 도복을 입고 메치기 · 굳히기 등의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패를 겨루는 맨손무술경기.
내용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와 자타공영(自他共榮)의 철학을 실현하려는 무예(武藝)로서 신체의 유연성과 근력 양성, 승부법과 정신수양에 적합한 운동이다. 공격과 방어의 수련과 경기를 통하여 신체를 단련하고 아울러 정신을 수양함으로써, 심신을 가장 유효하게 구사할 수 있는 대도(大道)를 체득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유도의 발생 과정은 다른 격기(格技)와 같이 생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 바빌로니아시대의 유적에서 발굴된 이란 지방의 청동인형을 보면 서로 붙잡고 힘을 겨루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옛 고구려의 각저총 역시 두 사람이 마주잡고 힘을 겨루는 모습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로 보아 둘이 마주잡고 힘을 겨루는 씨름이나 유도와 같은 투기는 오랜 옛날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쓰모도(松本)는 유도의 기원을 일본 유술의 시작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고사기(古事記)』에서 보이는 투기(鬪技: 격기)하는 장면이나 경기하는 모습은 고구려의 고분인 각저총에 보이는 벽화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이스모지방(出雲地方)을 정복한 천신계(天神系) 사람들이 고구려계 기마민족이었다는 사실은 일본 유술이 우리나라에서 전하여진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유도는 1882년 가노(嘉納治五郞)가 일본의 전통무술이었던 유술의 여러 유파 중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기술로 겨루는 승부법과 체련, 수심법을 체계화하여 ‘유도’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유도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전후로 한 1906년 일본인 우치다(內田良平 1874∼1937) 5단이 서울 명동에 돗자리 30매로 유도장을 개설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것은 1909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유도장이다. 즉,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는 “장정 100명을 육성하라.”는 이상재(李商在)의 제창으로 유도반을 설치, 무관학교출신인 유근수(劉根洙)와 나수영(羅壽泳)이 지도를 맡았다.

이를 계기로 황성기독교청년회 유도부는 우리나라의 유도발전에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1928년에는 유도용어를 한국어로 공포하였다.

그 뒤 1929년 9월에 동경유학생무도회 주최로 전조선중등학교 유도대회가 열였고, 같은 해 10월 황성기독교회 주최로 전 조선 단체 유도대회, 1930년 6월 연희전문학교 주최로 전조선중등학교 유도대회가 개설되었다.

이어 1931년에 이경석(李景錫)이 조선연무관을 개설하였고, 1932년에 조선유도연맹이 조직되어 유도보급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1938년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의 하나로 한국인 도장 모두를 고도관 조선지부로 강제통합 하였다.

광복과 함께 같은 해 10월에 조선유도연맹이 부활되고 회장에 이범석(李範奭)이 취임하였고, 1945년 9월 15일 서울에서 유도 유단자들이 YMCA회관에 모여 한국 유도의 중추기관 결성을 위한 발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발기인들은 1938년도에 일제의 탄압에 의해 강제로 고도관 조선지부에 통합되었던 사설 도장 대표들인 YMCA대표 이인덕(李仁德)과 석진경(石鎭慶), 조선무도관 대표 김윤근(金潤根)과 김상조(金相助), 조선광무관 대표 김근린(金根燐)과 전병용(全秉龍), 조선연무관 대표 배경열(裵庚烈)과 이동수(李東壽), 경찰상무회 대표 박경림(朴京林)과 박정준(朴正俊) 등이었다.

조직의 명칭을 조선유도연맹으로 하고 회관을 서울시 중구 소공동 111번지의 20, 1918년 일본인이 이왕직의 땅 373평에 현금 3,811원 53전으로 설립한 고도관 조선지부를 인수하여 사용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모임에서 고도관 조선지부 인수는 석진경(石鎭慶), 이원영(李元榮)에게 위임하였다. 며칠 뒤에 수임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고도관 조선지부 아베(阿部文雄) 간사를 찾아갔으나, 인수조건으로 3만 원을 요구하므로 우리 측 대표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 뒤에 고도관 조선지부는 조선연무관이 사용하게 되었다.

1946년 7월 을지로에 유도연맹회관 및 중앙도장을 설치하였다. 1950년 11월에는 한국 유도계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조선유도연맹과 대한연무관이 5인 위원회를 구성, 두 단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통합기관의 명칭을 대한유도회로 개칭하고 회관 및 중앙도장을 중구 소공동 111번지 전 고도관 조선지부로 이전하였다.

1953년 5월에 유도 중견 지도자 양성을 위한 대한유도학교가 설립되었고, 1955년 유럽에 3개월 동안 유도사절단을 파견하여 친선경기와 순회지도로 국위를 선양하고 유도를 널리 보급하였다.

1956년 아시아유도연맹과 국제유도연맹에 가입하였고, 국제유도연맹 부회장에 석진경 대한유도회장 서리가 피선되었다. 1957년 대법원 판결이 1945년 9월 24일 고도관 조선지부 일본인 이사들에 의해 행하여진 이사권은 불법이므로 그 대상을 귀속재산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확정판결이 있었다.

1961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하여 김의태(金義泰)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64년 동경에서 개최된 제18회 올림픽대회에서 선택종목으로 유도가 채택되어 석진경(石鎭慶), 방영두(方永斗)가 국제심판으로 참석하고, 김의태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67년 동경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정삼현(鄭三鉉), 김정행(金正幸), 윤수균(尹秀均), 김충조(金忠助), 박청삼(朴淸三)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67년 미국 솔트레이크시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때 박길순(朴吉淳)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70년 대만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최규본(崔圭本)이 중량급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정삼현, 김대권(金大權), 윤공화(尹恭和)가 은메달, 정이수(鄭利秀)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72년 서독 뮌헨에서 개최된 제20회 올림픽대회에서 오승립(吳勝立)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72년 대한학생유도연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학연맹과 중·고연맹으로 분리 조직하였다.

1974년 11월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3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1976년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올림픽대회에서는 장은경(張銀景)이 은메달, 조재기(趙在基), 박영철(朴英哲)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81년 제4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하형주(河亨柱)가 무제한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정삼현이 A급 국제심판자격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네델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개최된 제1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종학(朴鍾學)이 71kg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82년 핀란드에서 개최된 제7회 세계대학생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강의석(姜義錫)이 금메달, 1984년 제23회 올림픽대회에서는 하형주, 안병근(安炳根)이 금메달, 황정오(黃正五), 김재엽(金載燁)이 은메달, 조용철(趙容徹)이 동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유도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특히, 1986년 10월에 개최된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김재엽, 이경근, 안병근, 조형수, 박경호, 하형주 등이 8체급중 6체급을 석권하였고, 1988년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김재엽, 이경근이 금메달, 조용철이 동메달을 획득하여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함으로써 세계 정상을 차지하였다.

1989년 제16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병주(金炳周)가 금메달, 윤현(尹鉉), 김건수(金建秀), 조민선(曺敏仙), 정선용(鄭善溶)이 동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한편, 여자유도는 1934년 윤명신(尹明信)을 시초로 1940년 박해순(朴海順), 1906년 박정옥(朴貞玉) 등이 활동하였고, 특히 1970년대의 서경애(徐京愛)는 최초의 여자심판이었다.

1980년대에 한국대학유도연맹에서 한림배여자개인전을 신설, 국내 최초의 개인전 여자경기를 실시하였다. 그 뒤 1986년 제4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옥경숙(玉京淑)이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988년 올림픽시범종목으로 여자유도가 채택되었다.

1991년 제17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김미정(金美廷)이 72㎏급에서, 문지윤(文祉允)이 72㎏ 이상급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제7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현숙희, 박미희, 정성숙, 조민선, 손현미가 출전한 단체전에서 출전 사상 단체전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또한 개인전에서도 정성숙, 조민선이 금메달, 손현미가 은메달, 김소라, 손현미, 문지윤이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아시아는 물론 세계 최강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1995년 9월에는 6년 임기의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에 박용성(朴容晟) 대한유도회 회장이 피선되어 올림픽 정식 종목 사상 최초 한국인 국제연맹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I.J.F. 경기위원에 김상철(金相喆)씨가 피선되었다. 제19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조민선은 대회 2연패를 하였고 정성숙도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정선용은 은메달을 손현미, 이현경(李賢京)은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1996년 제9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정성숙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6년 제26회 올림픽 대회에서 조민선은 66㎏급에서 우승하여 세계선수권, 올림픽을 제패하는 선수가 되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유정호, 조인철, 유성연, 임정숙(林貞淑)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99년 팔마에서 개최된 제20회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여자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2000년 제27회 올림픽대회에서는 정부경·조인철이 은메달, 정성숙·조민선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처럼 한국 유도는 세계적인 강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심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선 마이크로폰 시설과 경기관련 복사할 수 있는 시설, 조명은 경기와 TV중계방송에 지장이 없는 밝기로 해야한다. 단, 국제경기는 밝기가 최소 1,500∼1,800룩스가 경기장 위에서 직접 비춰야하고 구석이나 사각에 그림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임원, 심판원은 규정한 심판복을 착용해야 하고 경기에 앞서 징 등의 신호소리에 익숙해져야 하고 전광판의 위치와 기능 등을 확인하고 심판의자를 바른 위치에 놓아야 한다. 심판은 규정에 따라 선수를 통제해야 하고, 선수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거나 불리한 장소에 임원, 코치, 사진기자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

경기임원과 운영요원은 계시, 기록, 경기순서, 작성자 등은 경기단체에서 사전에 직무수행에 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아야 한다. 계시원은 최소 2명 1명은 경기시간을, 1명은 누르기 시간을 담당하고 실수나 착각을 피하기 위해 감독할 임원이 있는 것이 좋다.

선수통제임원은 선수의 신원확인과 다음 경기준비와 첫번째 호명선수는 청색도복을 착용하게 하고 두번째 호명선수는 백색유도복을 입도록 하고 유도복의 표식 등을 확인한다.

의료진은 경기시간 동안 충분한 의료진을 배치한다. 응급치료를 위해 가까운 병원과 협조가 되어야하며 의료진은 부상 선수의 현황을 작성하여 경기단체에 제출하여 기록은 보관한다.

대회에 참가하는 경기지도자(코치)는 매 번 실시하는 심판지도자 강습회 수료자로 정장차림으로 예비도복을 지참하고 지정된 좌석에 착석해야 한다. 개회식은 참가선수와 심판원은 모두 선수, 심판복장으로 참석해야 한다.

시상식은 결승전이 끝난 후에 거행되며 입장 선수가 직접 시상식에 참석해야 하며 타당한 사유 없이 불참한 선수는 메달과 성적을 몰수할 수 있다.

선수의 인사 절차는 경기 시작 전에 선 자세로 인사를 할 때 유도복을 단정히 하며 허리는 35도로 구부리고 손바닥은 펼친손을 내려서 도복 바지의 바깥쪽 아래로 엄지손가락을 붙이고 상대방과 동시에 인사한다.

경기장의 진행요원 구성은 방송요원 1명, 행정요원 1명, 경기순서 기록자 1명, 경기내용 기록자 2명, 경기 계시원 1명, 누르기시간 계시원 1명, 심판임무 보조원 1명, 기록내용 복사물 배포자 1명, 경기용구 책임자 1명, 경기 전 선수관리 요원 1명, 참가선수 확인 요원 2명, 안전 요원 1명이 필요하다.

경기장의 필요 장비는 공인제품의 유도 매트, 주부심용 청백색 기 각 3개와 기통 3개, 진행용 테이블과 의자, 마이크, 경기장이 여러 개 있을 때 경기장마다 다른 소리의 부저, 초시계, 경기시간, 일시정지용의 황색 기와 누르기시간용의 녹색기, 의무석·코치석 심판용의 무선마이크로폰, 시상대, 도복 검사를 위한 스템프, 도복 검사를 위한 측정기구, 복사기, 전화, 팩스, 내빈 초청장, 대회참가 신청양식, 포스트, 프로그램, 상장, 대진표, 경기기록지, 경기순서, 경기결과, 선수명단과 경기주최자는 선수증, 임원증, 심판증서 등을 준비해야 한다.

개인전의 체급 구분은 아래와 같다.

초등부(남·여 5체급) 35kg, 43kg, 53kg, 65kg, +65kg

중등부(남 8체급) 48kg, 51kg, 55kg, 60kg, 73kg, 81kg, 90kg, +90kg

(여 8체급) 42kg, 45kg, 48kg, 52kg, 57kg, 63kg, 70kg, +70kg

고등부(남 9체급) 55kg, 60kg, 66kg, 73kg, 81kg, 90kg, 100kg, +100kg, 무제한

(여 8체급) 48kg, 52kg, 57kg, 63kg, 70kg, 78kg, +78kg, 무제한

대학 및 일반부(남 8체급) 60kg, 66kg, 73kg, 81kg, 90kg, 100kg, +100kg, 무제한

(여 8체급) 48kg, 52kg, 57kg, 63kg, 70kg, 78kg, +78kg, 무제한

경기방식은 단체전 체급별 대회는 체급당 1명의 후보를 무차별 단체전은 1명이 후보가 된다. 승패의 결정 순위는 승수가 많은 팀이 우선하고 내용 점수가 많은 팀으로 한다. 한판승 10점, 절반승 7점, 유효승 5점, 효과승 3점, 판정승 1점으로 내용 점수가 정해진다.

모두 동점일 때 비긴 선수전원 재경기를 하며 이때 심판은 비김을 인정하지 않고 판정을 내린다. 이렇게 해도 판정이 나지 않을 때는 체급별 경기는 추첨으로 1명을 재경기하고 무차별 시합시는 대표 선수를 선정하여 재경기를 실시한다.

득점은 초등부는 유효 이상을 중·고·대·일반은 효과 이상으로 한다. 각종 선발대회시는 득점이 없을 때는 휴식 없이 남자 5분 여자 4분 재경기하여 결정한다. 모든 경기는 토너먼트를 실시하며 선발전은 별도운영규정에 의하고 5명(팀)이하는 리그전으로 실시한다.

반칙패의 처리는 반칙패를 받은 선수는 다음 경기 출전 자격이 상실되고, 두 선수가 반칙패, 종합패를 받은 경우 다음 경기부터는 출전자격이 상실되고 결승전인 경우는 1위가 없고 모두 2위가 된다.

경기시간은 초등부 남녀는 3분, 중등부 남 4분, 여 3분, 고·대·일반부는 남 5분, 여 4분으로 정한다. 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선수는 소정양식의 신청서를 제출하며 대진추첨 전까지는 교체가 가능하다.

출전하는 모든 선수의 소속단체는 참가 선수의 상해 및 모든 사고에 책임을 져야한다.

유도복 심사는 경기전에 심판규정과 요구에 따라 실시한다.

추첨은 컴퓨터나 수동으로 실시하고, 대진표는 4, 8, 16, 32, 64, 128 등으로 작성된다. 같은 체급에 동일소속선수가 많을 경우 1회전만 서로 피하도록 시드를 배정한다.

계체량은 공식, 비공식으로 구분 실시하고, 경기 및 심판위원장의 책임하에 실시한다. 경기 날에 시행이 원칙이고, 공식계체량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이며,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종료되어야 한다. 비공식 계체량은 측정 횟수를 제한하지 않는다.

경기장은 최소 14m×14m에서 최대 16m×16m이어야 하고, 매트는 다다미 또는 이와 유사한 재질이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초록색을 사용한다.

경기장은 2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두 지역 사이의 경계를 위험지대라고 칭하고 일반적으로 홍색으로 표시되는데, 경기장 사방에 1m 폭으로 평평하게 설치한다. 위험지대를 포함한 그 안쪽을 “장내”라고 하고, 그 넓이는 최소 9m×9m에서 최대 10m×10m이어야 한다.

위험지대 밖의 구역을 “안전지대”라고 하고, 그 폭은 3m이여야 하며, 최소한 2.5m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기개시와 종료시의 선수의 위치는 경기장 내 중앙에서 4m 떨어진 주심의 오른쪽에는 홍색, 왼쪽에는 백색으로 표시한다. 경기장은 반드시 탄력성 있는 마루 또는 플랫폼(연단) 위에 설치해야 한다.

유도복은 광목을 면사로 누벼서 쓰고 있으며, 몸에 알맞은 크기를 입어야 한다. 상의는 허벅다리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길어야 하고, 소매와 양팔을 완전히 내려뜨린 상태에서 주먹 부위까지 닿아야 한다. 상의 몸통은 흉각 아래부분에서 최소 20cm가 겹칠 수 있를 만큼 넓어야 한다. 그리고 소매 폭은 팔에서 10∼15cm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의는 아무 표시가 없는 상태에서 다리를 완전히 덮어 발목 끝까지 닿아야 하고, 하의 길이가 발목에서 5cm 이내가 되어야 한다. 바지통은 다리에서 10∼15cm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복띠는 상의 허리 부분에 단단히 매어야 하며 두 번 감은 뒤에도 20∼30cm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자선수는 유도복 상의 안에 흰색의 튼튼한 반소매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 도복은 깨끗해야 하고 건조되어 있어야 하며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손톱과 발톱은 짧게 깍아야 하며 항상 청결하여야 한다. 긴머리는 상대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꽉 매어야 한다. 현재 국제 경기에서는 도복의 색깔을 흰색과 청색으로 구분하고 있다.

① 한판승(IPPON-GACHI):상당한 힘과 속도, 세찬기세, 그리고 통제력으로 메쳤을 때, 25초 동안 누르기를 했을 때, 꺾기나 조르기로 상대를 제압했을 때.

② 종합승(SOGO-GACHI):절반+경고 또는 경고+절반으로 이겼을 때.

③ 우세승(YUSEI-GACHI):절반, 유효, 효과, 판정이나 상대가 경고, 주의, 지도를 받아 이겼을 때.

④ 기권승(KIKEN-GACHI):경기도중 어떠한 이유로 경기를 포기하였을 때.

⑤ 부전승(FUSEN-GACHI):처음부터 경기에 임하지 않았을 때이다.

한편 누르기 시간에 의한 승의 종류는 ① 한판:25초, ② 절반:20초 이상 25초 미만, ③ 유효:15초 이상 20초 미만, ④ 효과:10초 이상 15초 미만, ⑤ 10초 미만의 “누르기”는 공격으로 간주한다.

경기중의 한 선수가 부상, 발병 또는 사고 등으로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을 때, 주심은 양부심과 상의한 후에 다음 사항에 따라 “승” 또는 “비김”을 결정하여 선언해야 한다.

먼저 부상의 경우는 ① 부상의 원인이 부상을 입은 선수 자신의 책임일 경우에는 부상을 입은 선수를 “패”로 한다.

② 부상의 원인이 상대 선수의 책임일 경우에는 부상을 입힌 선수를 “패”로 한다.

③ 부상의 원인이 양 선수의 어느 쪽의 책임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는 판정 선언 후에 “비김”이 선언된다. 또 경기중에 병이 나서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병이난 선수를 “패”로 한다. 그리고 경기 외적인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하여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을 때에는 판정 선언 후에 “비김”이 선언된다.

4개 부류로 나누어 기술한 금지사항은 선수를 선도하기 위한 지침이다. 그러나 위반행위를 한 선수는 누구에게나 해당 처벌이 당연히 내려진다는 것을 모두에게 명백히 알도록 한 것이다. 반칙 처벌은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반칙 행위 그 자체를 해당 부류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다.

두 번째 또는 거듭되는 반칙을 했을 때에는 이미 받고 있던 처벌은 자동적으로 없어진다. 이미 처벌받고 있던 선수의 거듭되는 반칙 행위의 처벌은 최소한 이미 받고 있는 처벌보다 다음으로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

주심이 반칙 행위를 처벌할 때에는 반드시 위반행위를 간단한 동작으로 보여 주면서 처벌의 이유를 선수가 알도록 하여야 한다.

경기중에 범한 금지사항의 위반행위는 주심이 “거기까지”를 선언한 후라도 처벌할 수 있다. 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경기종료 신호 이후에 범한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만약 승자 지시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도 있다.

옛날에는 무사들이 활·칼·창·무기와 마술과 격투술이 필수였다. 적과의 대전에서 활이나 칼에 맞아 떨어졌다 해도 죽지 않으면 다시 싸울 수 있고, 또한 무기들을 갖지 못할 장합이 많기 때문에 격투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무사들은 평생 기술연마를 하였다.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는 경우 앉은 자세에서, 선 자세에서 또는 편을 짜서 상대하는 경우에 적절한 대적기술을 연구하였다. 무도의 한 분야인 유능제강의 이에 따라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맞잡기와 몸의 이동, 기울기, 몸쓰기, 걸기의 이로 상대의 허가 생기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유도의 기술은 메치기(손기술, 허리기술, 발기술, 누우면서 던지기), 굳히기(누르기, 조르기, 꺽기)와 급소치기(치기, 찌르기, 차기)가 있으며, 기본동작으로는 자세, 맞잡기, 기울이기, 몸쓰기, 낙법 등이 있다.

참고문헌

『유도정감』(김덕수, 1997)
『한국유도발달사』(이학래, 보경문화사, 1990)
『학생스포츠 유도』(정삼현, 학원사, 1986)
『한국유도사』(이홍종, 한강문화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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