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대한유도회 상임고문을 역임한 체육인. 유도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귀국하여 1931년에는 청소년들이 글에만 열중하는 나약함에서 벗어나 강인한 정신과 보건향상으로 문화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사유재산을 투자하여 문과 무를 겸한 인재양성을 위하여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조선연무관을 설립하였으며, 1934년에는 여성의 건강은 제2국민을 양육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여자 자신이 호신술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여자유도부를 신설하였다.
또한 연무관에서는 일제의 탄압에도 한글학자 이병기(李秉岐) · 이희승(李熙昇) · 이극노(李克魯) 등을 초청하여 한글강습회를 주최하였다. 1934년에 보성고등학교에서 유도를 지도한 이래 보성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와 혜화전문학교(지금의 동국대학교)에서 상업과 공민교육을 하였다.
1945년에 자신이 운영하던 조선연무관을 처분하여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일본인이 설립한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1918년 당시 왕실소유의 373평의 땅을 일본인이 현금 3,811원 53전으로 인수)를 인수하여 조선연무관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57년 대법원의 판결이 “1945년 9월 24일 강도관 조선지부는 일본인 이사들에 의하여 행하여진 이사권은 불법이므로 그 대상을 귀속재산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결정으로 조선연무관 도장은 대한민국의 재산으로 귀속되어 재단법인 한국유도원 대한유도회 중앙도장으로 되었다.
특히 유도를 50여 년간 지도하여 5만여 명의 유도인을 양성하고 대한유도회 상임고문을 역임하였으며 1991년에는 85세의 나이로 유성(柔聖)의 경지라는 유도 10단에 승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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