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월 신문 간행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이종일(李鍾一)은 유영석(柳永錫)·이종면(李鍾冕)·이종문(李鍾文) 등의 권유로 정교(鄭喬)·장효근(張孝根)·염상모(廉相模) 등과 함께 신문을 창간하기로 뜻을 같이 하였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민중을 계몽하는 단체를 만들기로 결의하고, 같은 해 3월 민권총합과 정부의 비정(秕政)에 대한 비판을 활동목표로 내걸고 창립되었다. 회장 이종일, 부회장 유영석, 주간사(主幹事) 염상모가 선임되었고, 정교·이건호(李建鎬)와 이종문이 고문으로 추대되었으며, 회원은 30여 명이었다.
창립 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에 참여하여 러시아 세력의 축출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이권양여를 반대하였다. 그리고 서울 종로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여 민력이 총합되어야 나라도 부강해지고 민력도 신장되며 나라의 독립자주권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4월 박은식(朴殷植)·유근(柳瑾)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회원이 40여 명으로 늘었으며, 만일 독립협회가 해산된다면 뒤를 이어 나가기로 하였다. 또한 민력을 배양,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라 여겨 실학사상과 동학사상 교리를 강의하는 주말강좌를 개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독일·일본 등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이권양여를 반대하는 소(疏)를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 해 8월 회원들 중심으로 민권운동, 여성해방, 정부의 비정 비판 및 대안제시를 사시(社是)와 편집방침으로 하는 ≪뎨국신문 帝國新聞≫을 창간하였다. 회장인 이종일이 사장을 맡았고, 간부인 유영석·이종면 등이 운영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