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선사, 대선사, 왕사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교웅은 그의 자질을 인정하여 천태종을 융성하게 할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하루는 대장당(大藏堂)에 들어가 장경함을 열고 책을 보다가 문득 그 뜻을 통달하였다고 한다. 인종도 그의 자질에 감탄하여 뒷날 반드시 대법사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 뒤 1143년(인종 21) 울주(蔚州)에 있는 영축산(靈鷲山)에 머무르며 많은 학승들을 지도하였다. 1153년(의종 7)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1164년에 대선사(大禪師)로 임명되었고 1171년 왕사가 되었으며, 55세로 서쪽을 향하여 앉은 채 입적하였다.
문하에서는 많은 천태의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선사의 법계를 받은 승지(承智)를 비롯하여 재사(再思)·담요(曇曜)·의윤(顗胤)·신수(神秀) 등 1,200명의 제자들이 나와 고려 천태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호는 원각국사(圓覺國師)이며, 충청북도 영동군 영국사(寧國寺)에 비가 있다.
참고문헌
- 『고려시대 왕사·국사 연구』(박윤진, 경인문화사, 2006)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1919)
-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우정상·김영태, 신흥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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