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사 아미타극락회상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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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도림사 아미타극락회상도
곡성 도림사 아미타극락회상도
회화
작품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동리 도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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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동리 도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내용

1730년(영조 6) 작.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300㎝, 가로 278㎝. 거대한 화면 가운데의 아미타불 주위로 8보살 및 두 비구 스님,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두 팔부신중(八部神衆)이 둘러싼 군도식(群圖式) 원형 구도이다.

키형 광배를 지닌 아미타불의 머리 가운데는 타원형을 반으로 자른 듯한 중앙 계주(中央髻珠)가 장식되었다. 육계(肉髻)의 장엄한 둥근 정상 계주에서 피어오르는 광명이 양옆으로 길게 와운문(渦雲文)을 형성하고 있다.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눈썹 사이로 바싹 내려온 네모진 얼굴의 차분한 표정, 통견(通肩)의 법의(法衣) 자락이 형으로 대좌를 덮은 점 등은 1725년 작의 북지장사아미타극락회상도와 유사하다.

보관에 각각 화불(化佛)과 보병(寶甁)을 뚜렷이 나타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만이 흑갑사와 같은 검은 투명 두광으로 강조되었다. 불투명한 흰옷을 높은 보관에서부터 내려 입은 관음보살은 왼손을 내려 보병을 잡고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자비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대세지보살은 경책(經冊)을 얹은 연꽃을 들고 있다. 이 밖의 보살은 화려한 옷 무늬의 천의(天衣)를 입고 연꽃을 든 자세이다. 그러나 비구형(比丘形)의 지장보살은 석장(錫杖 : 중이 짚는 지팡이)과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는 사천왕은 보관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검(劍)을 든 지국천왕(持國天王)만이 털 달린 투구를 쓴 점은 1759년 작인 청곡사남암아미타극락회상도(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나 1831년(순조 31년) 작인 아미타극락회상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에도 나타난다.

가늘지만 유려한 필선으로 그린 이 그림은 밝은 홍색과 양록색이 주조색인데 홍색이 지배적이다. 화기(畫記)에 의하면 화원 채인(彩仁)을 우두머리로 하여 4인이 공동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미(美)』 16 -조선불화(朝鮮佛畵)-(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한국(韓國)의 불화(佛畵)』(문명대, 열화당, 1979)
「조선조아미타불화(朝鮮朝阿彌陀佛畵)의 연구(硏究)」(유마리, 『조선조불화의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조선조아미타불화(朝鮮朝阿彌陀佛畵)의 연구(硏究)」(유마리, 『조선조불화의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천은사극악전아미타후불탱화의 고찰(考察)」(유마리, 『미술자료』27, 국립중앙박물관, 19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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