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향약은 실시 지역·시대에 따라 그 성격뿐만 아니라 직임의 명칭까지 달랐다.
<여씨향약 呂氏鄕約>을 표본으로 하면서 감사(監司)의 행정적 지원 아래 도(道) 단위로 실시한 중종 때는 감사가 향약의 최고위 직임인 도약정·부약정을 1향(鄕)에서 존경받는 기로(耆老) 중에서 택정(擇定)하였다.
이 때 지방뿐만 아니라 경성에서도 향약의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도약정 직임을 찬성(贊成)이 맡았다. 1573년(선조 6) 예조가 ‘주자향약(朱子鄕約)’에 대해 심의하기를 청한 내용 가운데 외방의 사인(士人)이 희소한 곳에는 수령이 약정을 겸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써, 수령이 있는 군현 단위 향약의 최고위 직임을 약정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앞서 1571년이이(李珥)에 의해 실시된 청주의 ‘서원향약(西原鄕約)’은 면 단위로 실시되었다. 이 향약에서는 각 면마다 계장(契長)·유사(有司)를 두고 향중사류(鄕中士類) 3인 이상의 사류회의를 중심으로 향약의 전반적인 업무를 처리하였다.
1625년(인조 3)신달도(申達道)에 의해 실시된 ‘전주부향약(全州府鄕約)’에서는 부향약의 최고위 직임으로 도약정 1인을 덕업구존자(德業俱尊者)로서 추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예하 4면의 향약에는 각 면마다 부약정 1인을 두었으며, 다시 이(里)에는 서민으로서 1인을 이정(里正)으로 삼았다. 또한, 향약의 조직을 학교 조직과 합치시켜 도약정은 향교(鄕校)의 도학구(都學究), 부약정은 4면 서숙(書塾)의 부학구를 겸임하게 하였다.
1643년김세렴(金世濂)에 의해 실시된 ‘함흥부향약(咸興府鄕約)’은 각 면에 약장(約長) 1인을 두어 풍속교정(風俗矯正)과 춘추강신례(春秋講信禮)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함흥부 전체를 통할하는 부향약에는 치덕구존자(齒德俱尊者)로서 약장의 직무를 감찰, 논핵(論劾)하는 도약장 1인을 두고 그 아래 부약장 2인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1인은 좌수(座首)가 겸임하였다. 또한, 도약장·부약장은 향회(鄕會)에서 권점(圈點)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임기는 도약장이 종신인 데 비하여 부약장은 1년이었다.
이상에서 볼 때 대체로 조선시대 향약의 최고위 직임으로서 군현 또는 그 상위의 행정 단위에 도약정·부약정, 군현 또는 그 하위의 행정 단위에 부약정·약정을 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