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무늬토기는 돋을새김 무늬를 새긴 도장[印]을 표면에 찍어 오목새김 무늬로 장식한 토기이다. 경주 안압지와 고분, 산성 등에서 출토되었다. 선무늬, 점선무늬, 물결무늬, 원호무늬, 편자무늬, 꽃무늬, 구름무늬, 달개무늬, 물방울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졌다. 도장무늬가 새겨진 그릇 종류도 굽다리사발, 뚜껑, 병, 사발, 바리, 장군, 뼈단지등 다양한 편이다. 특히 도장무늬가 새겨진 뼈단지는 황갈색이나 황록색 유약을 입힌 시유토기(施釉土器)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함께 불교문화 파급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도장무늬[印花文] 토기로 일컬어지는 것은 역사시대 이후 등장하지만, 도구로 표면을 눌러 무늬를 새기는 수법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활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찍은무늬인 자돌(刺突) · 압인(押印, 押引)계 토기로, 출토된 곳의 이름을 따서 영선동(瀛仙洞)형 토기라고 불린다. 끝이 뾰족한 도구나 죽관(竹管)상 혹은 반재죽관(半裁竹管)상 도구 등을 이용하여 아가리 부분 쪽에 한정하여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인데, 표면에 직각으로 눌러 찍은 것이 있는가하면 눌러서 삐치거나 약간 그은 것 등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도장무늬 토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등장하여 유행하는데, 선무늬[線文], 점선무늬[點列文], 물결무늬[波狀文], 원호무늬[圓弧文], 편자무늬[馬蹄形文], 꽃무늬[花形文], 구름무늬[雲文], 달개무늬[瓔珞文], 물방울무늬[水滴形文]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졌다. 도장무늬가 새겨진 그릇 종류도 굽다리사발[臺附盌], 뚜껑[蓋], 병(甁)류, 사발, 바리[鉢], 장군[橫缶], 뼈단지[骨壺]등 다양한 편이다.
도장무늬 토기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출현하여 백제 복속과 더불어 한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분포하였다. 경주 안압지를 비롯하여 여러 고분과 산성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특히 원호무늬, 물방울무늬, 편자무늬, 점선무늬 등이 중심을 이룬다. 도장무늬 토기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비스탬프무늬로 이야기되는 날카로운 도구나 콤파스 등을 이용하여 삼각형무늬나 원호무늬, 물결무늬를 새긴 것이 확인되는데, 이들 무늬를 더욱 용이하게 새기기 위해 스탬프상의 도장무늬로 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도장무늬가 새겨진 뼈단지는 황갈색이나 황록색 유약을 입힌 시유토기(施釉土器)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도장무늬 토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함께 불교문화 파급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또한 도장무늬 토기가 새겨진 굽다리사발의 출현과 보급이 고구려제 청동사발의 모방에서 시작하여 신라 내부에서 발전하였고, 도장 기법의 출현을 중국 홍주요(洪州窯)의 조업 연대과 관련하여 이해하면서, 7세기 전반 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려시대 도장무늬 토기에는 새로이 덩굴무늬[唐草文]등이 등장하지만, 중국의 음양각 기법 등장으로 점차 도장무늬 기법은 쇠퇴하였다. 다만 고려청자 상감기법에 도장무늬 기법이 섞여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분청사기 무늬 제작에 다시 도장무늬가 새겨져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는 새로이 물고기무늬[魚文], 구름무늬, 번개무늬[雷文] 등이 등장하였고, 도장무늬가 연속적으로 새겨져 표면 전체를 덮는 형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