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뒤 대조선독립보합단원인 백운기(白雲起)·김중량(金仲亮) 등 20여 명이 조직하였다. 이들은 평양을 거점으로 하여 만주·중국 일대를 내왕하면서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민주공화정부가 세워지고,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 등 독립지사가 다수 이곳에 집결하자 이들과 통하면서 국내외의 독립투쟁을 전개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연통제와 교통국의 비밀조직을 통하여 임시정부와 중국·만주 일대의 정보를 국내에 들여와 즉시 투쟁을 실현하였으며, 국내의 각종 정보를 임시정부와 만주일대에 전달하고 그 후속 조처를 받아가지고 다시 귀국하면서 투쟁을 계속해왔다.
동시에 군자금을 500여회 모금하였으며, 3,000여 원의 현금을 임시정부와 만주·북중국 일대에 골고루 조달, 독립운동을 보다 활발히 전개하게 하여 크게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소련 및 체코군이 소유한 9연발자동권총 등 각종 무기와 탄약을 반입하여 만주일대에 산재한 독립군부대에 조달하였으며, 임시정부에도 이를 지급해주었다. 1925년경 일본경찰에 주모자 백운기 등이 붙잡힘으로써 이 단체의 활동도 소멸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