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관지진(官地鎭) 동승촌(東勝村)의 길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 지형은 평탄하고 넓게 트여 있으며 서쪽에는 목단강(牧丹江)의 지류인 관지하(官地河)가 동북쪽을 향해 흐르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서남쪽 2.5㎞ 떨어진 곳에는 발해시대의 것인 석호고성(石湖古城)이 있으며, 동남쪽 28㎞ 떨어진 곳에는 강동(江東)24개석, 동북쪽 10㎞ 떨어진 곳에는 해청방(海靑房)24개석이 있다. 현재 이 유적은 돈화시급중점문물보호단위(敦化市級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어 있다.
유적은 동서방향이며, 24개의 현무암이 각 열마다 8개씩 모두 3열로 나누어 배열되어 있다. 3열 가운데 동쪽 열의 북쪽에서 3번째 것과 서쪽 열의 북쪽에서 8번째 것이 사라져 지금은 모두 22개가 남아 있다. 정면 길이는 동쪽 열 10.65m, 가운데 열 10.6m, 서쪽 열 9.3m이며, 측면 길이는 9.05m이다. 주춧돌의 평면 형태는 대체로 둥근모양이며, 지름은 75㎝이다. 각 주춧돌 사이의 거리는 약 30㎝, 각 열 사이의 거리는 약 3m이다. 유적 주변에서는 적갈색·회색 기와편과 진한 회색·황색 질그릇 편, 적갈색을 띠는 아궁이 흙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이 발해시대 건축물이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되지만 그 용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발해왕 사후 귀장(歸葬)시 사용하던 임시 제단이라는 설, 발해 왕실의 기념 건축물이라는 설, 민간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라는 설, 거대 신석(神石)을 숭배하던 장소라는 설, 사원 또는 궁전·관청이라는 설, 역참(驛站)이라는 설, 중앙 또는 지방정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곡식 창고라는 설 등 다양하다. 이러한 견해들 가운데 발해의 주요 교통로 위에 세워진 역참이라는 설이 다수 연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