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덤은 집안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태평촌에서 다시 서쪽으로 1.5㎞ 떨어져 있는 오도령구문(五道嶺溝門) 남쪽 산비탈의 산중턱 아래쪽에 위치한다. 산비탈 아래로는 집안과 환인 지역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있다. 1978년 5월 중순오도령구문의 길을 보수하면서 청동기가 발견되었고, 이를 보고받은 집안현 문물보관소에서 곧바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무덤은 네모모양 단이 있는 계단식돌무지무덤[方壇階梯積石墓]의 형태로 축조되었다. 산비탈을 따라 축조하였는데, 산비탈의 경사는 약 25°이며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다. 북동쪽은 산에 의지하여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계단식 단은 확인되지 않았다. 남서쪽은 훼손이 심하게 이루어져 그 형태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3층에 걸쳐 몇 개의 큰 석재가 남아 있어 마치 고구려의 계단식돌무지무덤과 비슷하게 축조하였다. 그러나 경사에 따른 무덤의 안전을 고려하여 지대가 낮은 한쪽에만 계단식으로 단을 만들었다고 본다면 단순한 돌무지무덤[積石墓]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무덤 한 변의 길이는 약 14m이며, 3단의 계단식 단은 각 층 마다 1.3∼1.85m 안쪽으로 들여쌓았다. 각 단의 남아 있는 높이는 약 80㎝이다. 무덤 상단 중앙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서는 돌무지로 쌓아 만든 둥근꼴의 매장주체부가 조성되어 있다. 무덤의 북벽에서 약 5m, 동벽에서 약 12m 떨어진 매장주체부의 가운데 지점을 중심으로 11점의 청동기와 2점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는 청동단검, 청동칼끝〔銅鏢〕, 청동거울, 동투겁창〔銅矛〕, 부채도끼〔扇形銅斧〕, 긴네모모양 청동도끼〔長方形銅斧〕등이 있다. 청동단검은 칼몸〔劍身〕의 너비가 좁은 형식이나 어임〔抉入部〕과 마디가 없는 것으로 전형적인 한국식 단검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는 요령식 청동단검의 퇴화형으로 볼 수 있다. 청동거울은 두꼭지거친무늬거울[雙鈕粗文鏡]로 방사상(放射狀)의 문양을 가졌다. 동투겁창 역시 등대에 마디가 보이지 않아 전형적인 한국식 동투겁창과는 차이가 있다. 청동기 각 기종의 형태를 통해 볼 때, 유물의 중심연대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만기(晩期)로 여겨지고 있다. 철기로는 2점의 쇠화살촉〔鐵鏃〕만이 출토되었다. 형태는 도끼날모양으로 살촉몸의 봉부 쪽 너비가 넓고 곧날〔直刃〕을 가진 것으로 고구려 계통의 화살촉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오도령구문돌무지무덤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적으로서 고구려 돌무지무덤의 기원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북한 학자들은 이 돌무지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도끼날모양 쇠화살촉은 함께 출토될 수 없는 유물이라고 보고, 쇠화살촉은 부근의 다른 고구려무덤에서 나온 것이 뒤섞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