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돈화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12.5㎞ 떨어져 있으며, 목단강(木丹江) 상류 지류인 대석하(大石河)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석하는 이 산성 북쪽에서 약 4.5㎞ 동쪽으로 흘러 목단강으로 유입된다. 이 산성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목단강 건너편에는 영승(永勝) 유적이 있고, 북동쪽 15㎞ 떨어진 지점에는 오동성(敖東城)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북동쪽 7㎞ 지점에는 육정산고분군(六頂山古墳群)이 있다. 2006년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성산자산성의 평면 형태는 불규칙한 타원형이다. 성벽은 해발 600m에 이르는 성산자의 산봉우리와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데,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성벽 둘레는 약 2㎞이며, 남아 있는 높이는 1.5∼2.5m이다. 성벽의 아래 너비는 5∼7m인데 어떤 구간은 10m가 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산성의 북쪽은 수면에서 약 40m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벽은 상대적으로 낮은 높이로 축조되었다.
성문은 동문과 서문이 있다. 개구부(開口部)는 각각 3m와 4m로 서문의 크기가 약간 크며, 두 성문 안쪽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지는 둥근고리 형태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내일은요
남벽에는 3개의 치(雉)가 남아 있는데, 첫 번째 치는 서문에서 약 36m 떨어져 있다. 두 번째 치는 첫 번째 치에서 약 80m, 세 번째 치는 두 번째 치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동문 안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는 반지하식 집터가 50여 기 이상 확인되었다.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크기가 큰 것은 8×6m, 작은 것은 6×4m 정도이다. 집터는 성 안의 비탈을 따라 북쪽을 향해 경사져 있다. 집터의 남벽 밖으로는 도랑을 하나씩 팠는데, 도랑은 집터의 동서 양쪽으로 나 있어 비탈 아래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유도하여 집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집터의 기초 중간에는 깊이가 얕은 구덩이를 파고 네 벽은 흙을 쌓아 만들었다. 남아 있는 벽의 높이는 20∼40㎝이다. 각 방은 모두 하나씩의 문이 나 있는데 대부분 동쪽을 향해 있으나 일부는 북쪽을 향해 나 있는 것도 있다. 산성의 남쪽 경사지와 약간 서쪽에 치우친 곳에도 집터가 일부 남아 있다.
서문에서 약 100m 떨어진 약간 서북쪽에 치우친 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못이 있다. 못의 지름은 4.6m이며, 깊이는 1m이다. 산성 동쪽의 큰 집터 아래쪽에도 커다란 저수지가 남아 있다. 그밖에도 산성 중앙에는 한 변 길이가 약 100m에 이르는 연병장과 같은 평지가 확인되었다.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철제 창머리〔牟頭〕, 쇠칼〔鐵刀〕, 쇠화살촉〔鐵鏃〕,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있다.
성산자산성은 대체로 발해 초기의 유적으로 판단되는데, 특히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성(東牟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리적 위치를 통해 볼 때, 이 산성은 길림지역에서 발해 ‘구국(舊國)’ 도성이 있었던 돈화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어, 오동성(敖東城)의 위성으로서 군사적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