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현유향 성산자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산성.
개설
내용
성문은 동문과 서문이 있다. 개구부(開口部)는 각각 3m와 4m로 서문의 크기가 약간 크며, 두 성문 안쪽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지는 둥근고리 형태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내일은요
남벽에는 3개의 치(雉)가 남아 있는데, 첫 번째 치는 서문에서 약 36m 떨어져 있다. 두 번째 치는 첫 번째 치에서 약 80m, 세 번째 치는 두 번째 치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동문 안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는 반지하식 집터가 50여 기 이상 확인되었다.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크기가 큰 것은 8×6m, 작은 것은 6×4m 정도이다. 집터는 성 안의 비탈을 따라 북쪽을 향해 경사져 있다. 집터의 남벽 밖으로는 도랑을 하나씩 팠는데, 도랑은 집터의 동서 양쪽으로 나 있어 비탈 아래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유도하여 집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집터의 기초 중간에는 깊이가 얕은 구덩이를 파고 네 벽은 흙을 쌓아 만들었다. 남아 있는 벽의 높이는 20∼40㎝이다. 각 방은 모두 하나씩의 문이 나 있는데 대부분 동쪽을 향해 있으나 일부는 북쪽을 향해 나 있는 것도 있다. 산성의 남쪽 경사지와 약간 서쪽에 치우친 곳에도 집터가 일부 남아 있다.
서문에서 약 100m 떨어진 약간 서북쪽에 치우친 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못이 있다. 못의 지름은 4.6m이며, 깊이는 1m이다. 산성 동쪽의 큰 집터 아래쪽에도 커다란 저수지가 남아 있다. 그밖에도 산성 중앙에는 한 변 길이가 약 100m에 이르는 연병장과 같은 평지가 확인되었다.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철제 창머리〔牟頭〕, 쇠칼〔鐵刀〕, 쇠화살촉〔鐵鏃〕,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敦化城山子山城考察記」(徐學毅,『北方文物』2006年 4期)
- 「城山子山城」(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敦化市文物志』, 1985)
- 「渤海東牟山考」(劉忠義·馮慶余,『松遼學刊』1984年 1期)
- 「吉林敦化牡丹江上游渤海遺址調査記」(王承禮,『考古』1962年 11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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