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길림 소달구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 소달구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41년부터 1953년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28기의 돌널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소달구 북쪽의 평정산 남쪽 기슭을 따라 동서로 길게 분포하고 있다. 평정산 동쪽 정상부에는 대형 돌널무덤이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돌널과 뚜껑돌의 길이가 2m가 넘는다. 이 유적의 돌널무덤들은 모두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 각종 석기가 있으며, 가락바퀴, 돼지뼈 등도 확인되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7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정의
중국 길림성 길림시(吉林市) 소달구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내용
이 유적의 돌널무덤은 모두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그리고 일부 딸린널〔副棺〕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딸린널을 따로 조성하였다. 무덤의 규모는 대체로 길이 1.64∼2.2m, 너비 37∼65㎝, 높이 31∼65㎝이다. 이 가운데 1949년에 조사된 무덤 중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는 M4호를 통해 무덤의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M4호의 돌널은 약 20° 경사의 산비탈에 위치해 있으며 머리쪽은 지표 아래 140㎝, 발쪽은 지표 아래 85㎝ 쯤에 놓여 있다. 무덤 방향은 서쪽으로 약 20° 기울어진 남향이며, 머리방향〔頭向〕은 동북쪽이다. 돌널은 비교적 큰 청석(靑石)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뚜껑돌과 네 벽석, 바닥석, 딸린널로 구성되었다. 뚜껑돌은 3장의 대형 판석으로 덮었는데, 전체 길이는 275㎝, 너비는 103㎝, 두께는 약 26㎝이다. 돌널의 네 벽은 남북 양단에 각각 판석으로 2∼3단씩 쌓아올렸으며, 판석은 암벽 위에 직접 세웠다. 돌널의 내부 길이는 190㎝이며, 북단 너비는 65㎝, 남단 너비는 57㎝, 높이는 50∼60㎝이다. 딸린널은 돌널의 끝에 붙여서 3장의 청석으로 만들었다. 뚜껑돌은 별도로 만들지 않고 돌널의 뚜껑돌로 대신하였다. 딸린널의 크기는 너비 62㎝, 길이 35㎝, 높이 38㎝이다.
무덤의 장식(葬式)은 머리를 약간 옆으로 뉘었고, 상체는 하늘을 향해 바로 눕히고〔正向仰臥〕, 양팔은 가슴부위에서 교차되었다. 다리〔下肢〕는 오른쪽 다리가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대체적으로 머리만 옆으로 뉘이고 곧게 펴 묻었다〔側首仰身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서단산형의 단지와 바리〔鉢〕등의 토기, 연주식 청동장식〔聯珠狀銅飾〕등의 청동기, 옥도끼,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돌자귀 등의 각종 석기가 있으며, 가락바퀴, 돼지뼈 등도 확인되었다. 평정산 정상부의 대형 돌널무덤에서는 부채도끼〔扇形銅斧〕, 청동손칼, 청동단추장식, 청동화살촉, 가락바퀴, 백석대롱,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서단산문화와 길림 지역의 청동기문화』(오강원, 학연문화사, 2008)
- 『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 및 발해유적답사보고』(주영헌,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 『西團山文化硏究』(董學增, 吉林文史出版社, 1994)
- 「吉林市騷達溝石棺墓整理報告」(段一平·李蓮·徐光輝,『考古』1985年 10期)
- 「吉林市騷達溝山頂大棺整理報告」(吉林省博物館·吉林大學考古專業,『考古』1985年 10期)
- 「吉林騷達溝石棺墓人骨的硏究」(潘其風·韓康信,『考古』1985年 10期)
- 「騷達溝山頂大棺文化性質新析」(張石瑛,『東北師大學報』1983年 3期)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