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초기, 경주(慶州)를 중심으로 동남해안 지역에 설치되어 해적 방어와 대일(對日) 교섭, 관내 순찰 등을 담당한 행정 구역.
위치
형성 및 변천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개편하면서 예주(禮州: 영덕군 영해읍), 울주(蔚州: 울산), 양주(梁州: 양산), 금주(金州: 김해) 등 4곳에 방어사(防禦使)가 설치되었다. 동남해안 지역은 일본이나 동여진(東女眞) 해적의 노략질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민사 행정 중심의 지주사(知州事) 대신 군사 기능이 중요한 방어사를 둔 것이다. 경주와 함께 이들의 관할 지역을 묶어 ‘동남해’로 칭한 것이다.
동남해에는 동계 북부의 진명현(鎭溟縣) 및 원흥진(元興鎭)과 더불어 선군(船軍)과 선박을 관리하는 관청인 도부서(都部署)가 설치되었다. 동남해도부서는 1049년(문종 3)에 처음 사례가 보여 그 이전에 설치된 것을 알 수 있다. 책임자는 도부서사(都部署使)이며, 본영(本營)은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뒤에 김해로 옮겼다.
동남해도부서는 해안 방어와 대일(對日) 교섭이 주된 기능이었지만, 관내의 민사 업무까지 담당하면서 도에 해당하는 기능도 수행하였다. 일례로 외방의 죄수들을 점검하고 판결할 때 보통 계수관의 관원이 돌아다니며 처리하였지만, 동남해는 도부서가 담당하였다.
995년(성종 14)에 설치한 10도, 즉 관내도(關內道) · 중원도(中原道) · 하남도(河南道) · 강남도(江南道) · 영남도(嶺南道) · 영동도(嶺東道) · 산남도(山南道) · 해양도(海陽道) · 삭방도(朔方道) · 패서도(浿西道)를 현종 때 5도양계, 즉 양광도(楊廣道) · 경상도(慶尙道) · 전라도(全羅道) · 교주도(交州道) · 서해도(西海道)와 동계(東界) · 서계(西界)로 개편하였다.
오도(五道)가 자리를 잡으면서 도의 기능은 경상도(慶尙道)로 흡수되었다. 이 때문에 도부서사를 경상도 안찰사(按察使)의 전신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다만 필요에 따라 동남해를 분리하여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1128년(인종 6)에는 동남해 안무사(安撫使)가 거제도 지역의 해적이 투항한 것을 보고한 사례가 확인된다.
참고문헌
원전
-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남규, 『고려양계지방사연구』(새문사, 1989)
논문
- 윤경진, 「고려 안찰사의 연원과 ‘오도안찰사’의 성립」(『한국문화』 61,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13)
- 김호종, 「동남해도부서사의 설치와 그 기능: 금주본영을 중심으로」(『민족문화논총』 2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9)
- 김남규, 「고려도부서고」(『사총』 11,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196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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