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년(성종 14)에 당나라의 10도를 본떠 편성한 도(道)의 하나이다. ‘삭방(朔方)’은 통상 북쪽의 변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삭방도는 당나라의 10도에는 없지만 전쟁 때 지휘관인 총관(總管)의 직명(職名)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관내에 62개의 현이 있었으며, 기록상 이를 7개의 주로 편제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주의 수는 17개 정도로 추정된다. 소속 관원으로는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화주(和州: 지금의 영흥) 1곳에, 단련사(團練使)가 동주(東州: 지금의 철원), 장주(獐州: 지금의 연천), 춘주(春州: 지금의 춘천), 교주(交州: 지금의 회양), 등주(登州: 지금의 안변),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 척주(陟州: 지금의 삼척) 등 7곳에, 방어사(防禦使)가 고주(高州: 지금의 고원), 용주(湧州: 지금의 원산), 문주(文州: 지금의 문천) 등 3곳에 있었다.
고려가 변경 지역을 양계(兩界)로 편성할 때 삭방도는 동계(東界)가 되었다. 고려 중기에 서남부 일원이 교주도(交州道)로 분리되었다. 또한 동계 관내에 재정 감독과 관리 감찰을 담당하는 감창사(監倉使)를 파견하는 구역으로 명주도(溟州道), 연해도(沿海道)와 함께 삭방도를 두었다. 이 중 삭방도는 북쪽의 화주 일원으로 짐작된다.
이후 몽골과 전쟁을 치르면서 동계 북부 지역은 몽골에 몰입되어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관할이 되었다가 공민왕 때 수복되었다. 남아 있던 동계 남부 지역은 강릉도(江陵道)로 편성되었고, 다시 교주도와 합쳐 교주강릉도로 칭해지다가 조선시대에 강원도가 되었다. 수복한 쌍성총관부 지역과 이후 새로 개척된 지역은 다시 동북면(東北面), 또는 삭방도라고 불렀으며, 조선에서 함경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