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년(성종 14)에 지리적 조건을 고려해 전국을 십도로 나누고 죽령(竹嶺)을 기준으로 해서 그 동쪽 지역을 지칭한 명칭이다. 이는 당나라 태종이 산천의 형편에 따라 전국을 나누어 10도로 정한 것을 본받아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이전에 경주(慶州)와 김주(金州)의 관할하에 있던 9주(州) ·35현(縣)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경주 · 김주 · 영주(永州) · 하주(河州) · 함주(咸州) · 밀주(密州)만 『고려사(高麗史)』 지리 지 등에서 확인된다.
한편 영동도를 포함한 10도의 성격에 관해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다. 도가 지방 행정구역의 최고단위이기는 하지만 행정구역이 아니고 다만 순찰 · 감찰 구역에 불과하며 상주하는 도의 장관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 또 도의 장관을 관찰사로 보고,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찰했다는 견해가 있다.
도의 장관을 전운사(轉運使)로 보고, 도는 중앙정부와 주 군(州郡) 사이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조부(租賦)를 운반하는 방면을 표시하거나 지방순찰구획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행정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주 · 군 · 현의 외관들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 절도사가 도의 장관으로서 도를 전제(專制)하고 출척을 행했다는 견해도 있다. →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