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창왕 즉위년) 9월 정방이 혁파된 뒤 설립되었다. 주된 기능은 제배(除拜)·부인(符印) 등을 관장하는 것이었다. 소속관원으로는 양부(兩府)의 관리가 겸임하는 판사(判事) 4인, 대언(代言)이 겸임하는 윤(尹) 1인, 소윤(少尹) 1인과 타관이 겸직하는 승(丞)·주부(注簿)·직장(直長)·녹사(錄事)가 각 2인이 있었다.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 7월 판사 4인을 양부에서 겸임하는 것만 고려시대와 같다. 그 밖에 주로 타관이 겸직하던 윤 1인은 정3품, 소윤 1인은 정4품, 승 2인은 정5품, 주부 2인은 정6품, 직장 2인은 정7품, 녹사 2인은 정8품, 서리 6인은 9품 거관(去官)으로 각각 맡게 하였다.
1405년(태종 5) 좌우정승이 판사를 겸하도록 하였다. 1466년(세조 12) 상서원(尙瑞院)으로 개칭되어 1894년(고종 31)까지 존속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상서원은 인사의 기능을 상실한 이조의 속아문으로 고려시대 상서사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 상서사의 주요기능인 제배, 즉 인사행정은 정방의 기능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정방과 같이 인사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고, 그 자격기준에 맞게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부인(符印) 즉 인장을 맡게 된 연유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1330년(충혜왕 즉위년) 2월 정방이 인신사(印信司)의 기능을 흡수하고 지인방(知印房)으로 불린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