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동동사(動動詞)를 부르며 춤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종 31년(1449)까지도 ‘동동정재(動動呈才)’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 뒤 ≪악학궤범≫에서는 두 손에 상아로 만든 작은 박(拍)을 들고 장단에 맞추어 치면서 춤춘다는 뜻에서 ‘아박(牙拍)’이라고 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꿇어앉아 절하고 일어나서 춤을 추고[跪俛伏興], 끝날 때도 꿇어앉아 절하고 일어나서 퇴장하는 격식[拜俛伏興退]을 갖추고 있다. 2인 또는 4인이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