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에게 국적 있는 역사교육·철학교육 등 민족교육을 시켜 그들로 하여금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이 독립운동에 대한 참여의식을 가지게 되면 일본군국주의 침략자가 축출되고 동양에는 영원히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의도에서 민족진영 인사들이 조직하였다.
단장은 공인(孔仁)이 맡았으며 단원은 40여 명이었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의 주요인물들이 참여하였다. 본부는 상해에 두었으며, 세력범위는 중국 내의 한국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10여 군데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후원하면서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는데, 1920년대 후반에 가서는 군무부의 주요인사가 이동하거나 이탈하여 세력이 크게 신장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