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청의 본영은 서울 남소문 동쪽에 있었는데,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신영(新營)·남소영(南小營)·동영·집춘영(集春營) 등을 설치하였다. 공해(公廨)의 하나는 선인문(宣仁門) 밑에, 다른 하나는 경희궁 개양문(開陽門) 밑에 있었다.
입직군이 담당한 궁장(宮墻 : 宮城) 파수지역은 내사복시(內司僕寺) 앞 수문 모퉁이에서 동영까지와 내농포(內農圃)에서 돈화문 동쪽까지이다. 궁장 밖을 순라하는 때는 오경 무렵으로, 초관이 입직군 20명을 거느리고 두 바퀴 순행하였다.
기사장·파총·초관 각 1명씩과 기사 25명, 지방군 61명이 동영에 입직하도록 규정되었고, 국왕이 임시로 경희궁에 거처할 때는 초관 1명이 지방군 50명을 영솔, 입직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