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대왕신

  • 종교·철학
  • 개념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길성 (계명대학교, 민속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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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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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내용

조선시대 영조와 후궁 영빈이씨(瑛嬪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였던 사도세자(思悼世子, 莊憲世子)를 신격화한 것이다.

영조는 1762년 윤5월 13일에 창경궁 휘녕전(徽寧殿) 앞뜰에서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넣은 뒤 궁중 한 모퉁이에 방치하여 7일 만에 굶겨 죽였는데, 이 때문에 사도세자에게 뒤주대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는 왕세자로서 당연히 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뒤주 안에서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민간에서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신으로 모시고 받들게 된 듯하다. 이것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은 그 원한이 크기 때문에 사람에게 붙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는 무속신앙의 구조에 의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은 일반 서민들이 받게 되는 억울한 감정과 일치하기 때문에 몇몇 왕신들과 함께 민중의 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신으로서 뒤주대왕신으로 신앙화되었으며, 평안과 재수의 신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뒤주대왕신은 서울지방의 무속에서 열두거리 중 별상(別相)거리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서울과 그 주변의 신당에서 모셔지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의 무(巫)』(조흥윤, 정음사, 1983)

  • - 『조선조(朝鮮朝) 여류문학(女流文學)의 연구(硏究)』(김용숙, 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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