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조와 후궁 영빈이씨(瑛嬪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였던 사도세자(思悼世子, 莊憲世子)를 신격화한 것이다.
영조는 1762년 윤5월 13일에 창경궁 휘녕전(徽寧殿) 앞뜰에서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넣은 뒤 궁중 한 모퉁이에 방치하여 7일 만에 굶겨 죽였는데, 이 때문에 사도세자에게 뒤주대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그는 왕세자로서 당연히 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으나 뒤주 안에서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민간에서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신으로 모시고 받들게 된 듯하다. 이것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은 그 원한이 크기 때문에 사람에게 붙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는 무속신앙의 구조에 의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은 일반 서민들이 받게 되는 억울한 감정과 일치하기 때문에 몇몇 왕신들과 함께 민중의 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신으로서 뒤주대왕신으로 신앙화되었으며, 평안과 재수의 신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뒤주대왕신은 서울지방의 무속에서 열두거리 중 별상(別相)거리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서울과 그 주변의 신당에서 모셔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