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사지 ()

목차
관련 정보
만덕사지
만덕사지
건축
유적
문화재
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시대 기와와 석조유물 등이 출토된 사찰터. 시도기념물.
목차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시대 기와와 석조유물 등이 출토된 사찰터. 시도기념물.
내용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동래 온천동에서 구포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중턱에 있는 이 절터의 주위에는 사기(寺基)부락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전부터 대규모의 절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터의 중앙부에 있는 장방형의 축대(동서 68m, 남북 54m, 높이 4m)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이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및 서북쪽 200m지점에도 법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의 초석이 있다. 또한 서남쪽 150m지점에는 당간지주(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가 있다.

1979년 절터의 주위에서 수습된 삼층석탑이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이전 복원되어 있고, 연화대석(蓮花臺石)이 발견되었으며, 절터 주위의 금동사라는 소암자에 석탑의 옥개석 3개와 석등의 대석 2개가 있다.

1971년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유물 중에는 청동제인왕상(靑銅製仁王像 : 길이 11㎝)과 각종 와당이 있다. 또한 연자방아, 떡구시라 불리는 미완성 돌구유 등도 있어 이 절터가 비교적 규모가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1973년 만덕로가 동서로 관통하면서 주위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절터의 옛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만덕사지의 내력에 대한 확실한 문헌자료는 없으나 《불교사전》에 ‘만덕사 경상남도 동래군 우이면 만덕리에 있는 절, 1391년(고려 충정왕 3년) 창건’이라 하였는데 이것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충혜황의 서자 기(器)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가두었다는 기사가 있어 이 기록의 만덕사가 만덕동의 만덕사로 추정된다.

그러나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전국에 다섯 군데가 있어 만덕동의 절터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만덕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90년과 1996년에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축대의 내부를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동서길이 24.9m, 남북길이 20.4m의 금당지가 확인되었다.

금당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평면구조는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금당지에서는 두 개의 축대가 조사되었는데, 하나는 할석을 이용한 축대이며 다른 하나는 규격화된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쌓은 축대이다. 전자는 초축된 것이며 후자는 증축 때 만들어진 것이다. 증개축 때의 기단은 초축기단의 바깥쪽에 만들어졌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다양한 연화문 수막새, 당초문과 귀목문 암막새, 대규모 치미, 8각석조대좌, 연화대좌, 청자와 분청사기 등의 도자기류, 화강암제 초석, 석등의 보주, 석탑의 노반 등이다.

출토유물 중 주목되는 것은 기비사(祇毗寺)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이다. 절터의 명칭을 알 수 있는 명문인데 문헌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절 이름이다. 기비사와 관련된 명칭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기비현’이라는 현재의 만덕고개를 지칭하는 것이 있어 한자는 다르지만 기비사와의 관련성을 시사한다.

이 절터에서 출토된 각종 기와와 석조유물의 양식으로 보아 창건 연대는 고려 초 또는 통일신라시대 말일 가능성이 있다. 폐사에 대한 기록도 없으나 조선 초기의 지리지에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는 고려 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금동사라는 소암자의 석탑과 석등, 분청사기의 출토 등으로 보아 마지막 폐사는 임진왜란 때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부산 만덕동 폐사지 조사보고』(심봉근, 동아대학교, 1972)
「만덕사지삼층석탑 복원이건」(박경원, 『부산직할시립박물관연보』 3, 1981)
『부산시사』 4(부산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91)
『부산의 문화재』(부산직할시, 1993)
「부산만덕사지」(『부산직할시립박물관유적조사보고』 제7권, 부산직할시립박물관, 1993)
관련 미디어 (3)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