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원래 좌수영은 동래 감만리포(남구 감만동)에 있었으나,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옮겨갔다가 다시 임진왜란 직전에 동래 남촌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 연대는 확실치 않다.
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의 성지이다. 1636년(인조 13)에 다시 감만리포에 옮겼다가 1652년(효종 3)에 또다시 동래 남촌의 옛터로 옮겨와서 1895년(고종 32) 7월에 군제개혁으로 수영이 혁파되기까지 243년간 이곳에 있었다.
좌수영에는 무관 정3품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고 그 관하에는 원래 1개의 검사영(거진), 즉 부산포진과 10개의 만호영이 있었다. 다대포(동래)·해운포(동래)·서평포(동래)·두모포(울산)·개운포(울산)·서생포(울산)·염포(울산)·포이포(영해)·감포(경주)·마포(영포)·축산포(영해)·칠포(흥해)가 만호영이었다.
좌수영의 초기 축조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임란 전에 이곳으로 이건하였을 때는 벌써 성이 축조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성은 임란을 계기로 폐허화되었고, 언제 다시 축조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1652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오고 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좌수영성은 석축으로 둘레 1,193보(步), 높이 13척이며, 동문을 영일문, 서문을 홍요문, 남문을 주작문, 북문은 홍진문이라 하였고, 이들 성문에는 각기 문루가 있었다. 특히 남문 밖 양측에는 돌로 다듬어놓은 박견(拍犬) 이 있어 이채롭다. 성은 1692년(숙종 18)에 중수되었고 1872년(고종 9)에 크게 수리되었다.
이 성은 하부의 거석을 보면 견고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축성이 고된 노역이었음도 짐작된다. 성문 중 남문의 규모가 가장 컸다. 성안에 배수구가 정비되고 수문이 4곳에 설치되어 동부의 대하에 유입되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