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영조 51년(1775)종서(宗瑞)김규진(金圭鎭)이 창건, 누대를 세거하다가 1964년이재천(李在千)이 매수하였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망천동(輞川洞)에 있었던 집을 1987년임하(臨河)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자 지금 자리로 이건하였다.
대문간채와 안채가 현존하는데, 대문간채는 정면 4칸, 측면 단칸통(單間通)으로 대문 · 방 · 부엌 · 외양간 순서이고 외양간 바깥벽에 측간이 부설되었다. 특색은 대문이다. 보통은 처마 아래로 들어서게 마련인데 이 집에선 끝간 합각쪽에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서 대문이 북향하였다. 보기 드문 구조이다. 안채는 一자형 날개집으로 정면 6칸인데 중문 우측으로 작은사랑방과 마루, 좌측으로 큰사랑방 2칸과 마루가 자리잡았다. 날개의 좌우 끝에 각각 마루를 시설한 배치법도 주목된다. 좌측날개는 사랑방에서 시작하여 감실과 고방, 이어 부엌이다. 안채 본당에 이어지며 2칸의 안방인데 큰사랑방을 바라다 보는 위치에 있다. 이어 대청이다. 2칸 계속되던 대청이 우측날개로 꺾어지면서 1칸 더 계속된다. 다음에 상방이고 드나드는 공간인 쪽문, 이어 작은 사랑방이 된다.
이집 배치에서의 특성은 대청을 ㄱ자로 3칸 계속시켰다는 점인데, 그로 인하여 건넌방이 생략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작은사랑의 독립을 분명히 하였는데 이런 유형은 보기가 흔한 것이 아니다. 창건당시 식구 구성에 남자아이들이 많다는 점이 고려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으나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