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진사댁 경사 ( )

연극
작품
1949년에, 오영진(吳泳鎭)이 발표한 일문 시나리오 「孟進仕邸の慶事」(1943)을 한글로 만든 희곡.
이칭
이칭
시집가는 날, 도라지 공주
작품/문학
창작 연도
1943년
발표 연도
1949년
작가
오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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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맹진사댁 경사」는 1949년에 오영진(吳泳鎭)이 발표한 일문 시나리오 「孟進仕邸の慶事」(1943)을 한글로 만든 희곡이다. 1943년 『국민문학』 4월 호에 발표된 것을 오영진이 극협 공연을 위해 한글로 번역하였다. 극단 신협은 이 작품을 「맹진사댁 경사」, 「시집가는 날」, 「도라지 공주」 등의 제목으로 공연했고, 1968년 실험극장은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했다. 또한 1956년 영화 「시집가는 날」(이병일 감독)로 만들어져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희극상을 수상했다.

정의
1949년에, 오영진(吳泳鎭)이 발표한 일문 시나리오 「孟進仕邸の慶事」(1943)을 한글로 만든 희곡.
구성 및 형식

희곡 「맹진사댁 경사」에는 결혼 의례 과정이 2막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13의 성사와 진행, 결혼식과 첫날밤이 ‘거짓 계략’과 ‘신부 바꿔치기’라는 극적 상황과 함께 진행된다. 오영진은 대중에게 친숙한 결혼 의례 절차를 극 구조로 사용하면서 ‘거짓말’과 ‘계략’이 서로 맞물리지 않고 어긋나게 함으로써 엉뚱한 상황과 웃음을 유발한다. 이러한 희극성은 1940년대 일본어로 된 시나리오인 「孟進仕邸の慶事」의 창작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오영진은 글을 배우지 못한 조선 대중은 친숙한 소재를 통해 계몽되기 때문에 검열 과정에서 주14은 너그럽게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당시 ‘유머’는 오영진에게 조선 영화를 수호하는 방편이었다. 「맹진사댁 경사」가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한국의 시공간을 거치면서 민족의 주18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유머를 통한 결혼 의례의 시각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내용

맹진사댁 외동딸 갑분이와 정혼하게 된 김판서댁 아들 미언은 자신의 다리가 불구라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소문을 믿은 맹진사는 외동딸 갑분이를 피신시키고 대신 하녀 입분이를 신부로 가장시켜 혼례를 시킨다. 한편 하인 삼돌이는 자신과 입분이의 혼인을 약속했던 맹진사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자 분노한다.

혼례 날에 미언의 훤칠한 외모와 건강한 신체를 본 맹진사는 삼돌이에게 피신시킨 딸 갑분이를 데려오게 하면서 혼례를 미뤄보려 하지만, 아버지 맹 노인의 재촉으로 어쩔 수 없이 혼례를 진행한다. 첫날밤에 입분이는 자신을 하녀라고 미언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미언은 진실한 마음을 얻으려고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며 입분에게 용서를 구한다. 뒤늦게 집에 온 갑분이는 아버지 맹 진사를 원망하고, 삼돌이는 맹 진사를 장인이라고 부르면서 극이 끝난다.

관련 민속

1930년대 후반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어문학을 전공했던 오영진은 당시 굿이나 주19, 주20인형극에서 주21을 발견하려는 조선 민속학의 영향을 받았다. 오영진은 첫 번째 시나리오 「배뱅이굿」(1942, 『국민문학』)에서 무속을 남성의 영역이자 계승해야 할 전통으로 바꾸고, 놀이성과 연극성을 시각화했다.

1943년에 발표한 시나리오 「孟進仕邸の慶事」 는 「배뱅이굿」 · 「한네의 승천(昇天)」과 더불어 ‘민속 3부작’으로 오영진의 초기 작품 세계를 잘 보여 준다. 당시 1943년은 일제시대 말기로서 ‘민족적 요소가 말살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영진이 전통적 소재에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은 국가가 없는 시기에도 조선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오영진은 「맹진사댁 경사」에서 주22인 ‘뱀 서방’(구렁 선비)이나 ‘딸 팔아먹은 아비’(처녀매매) 등 대중과 친숙한 민담을 소재로 활용했다.

의의 및 평가

텍스트의 정전화는 재정의 되거나 재해석되면서 각 시대의 요청에 따라 새롭게 구축된다.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는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 안에서 재탄생되었다. 특히 주23인 일문 시나리오 「孟進仕邸の慶事」를 어떻게 한국 문학의 자산으로 평가할 것인지 연구되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전통 혼례의 장면 묘사에서 우리말에 일본어 외피를 입혔다는 점이 강조되었으며 더불어 희곡 「맹진사댁 경사」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더해졌다. 「맹진사댁 경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에는 전통 혼례를 통한 신분 이동이라는 희극적 서사,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정치적 의미, 시대별로 각광받는 무대 공연 장르로의 변화 등이 있다.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 는 시대의 격변기마다 새로운 장르에 적응하면서 「시집가는 날」로 재생산되었다. 88 서울올림픽 경축 전야제, 1995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개관 공연, 2000년 국립국악원의 ‘경서도 소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 작품으로 공연되었다. 2009년에는 명동 극장 개관 기념을 위해 「맹진사댁 경사」로 공연되었다.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는 국가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마다 조명을 받았다. 성숙한 희극 정신의 바탕 위에서 창조된 「맹진사댁 경사」는 연극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원전

오영진, 「孟進仕邸の慶事」 (『국민문학』, 1942)
이근삼, 서연호 편, 『오영진 전집1~5』 (범한서적주식회사, 1989)
이재명 외 엮음, 『해방 전(1940~1945) 창작 시나리오집』 (평민사, 2004)

단행본

김윤미, 『우울과 환영: 오영진 일기와 영화론 연구』 (평민사, 2019)
서연호, 『한국 연극사』 (연극과 인간, 2003)
서연호, 「오영진, 웃음의 미학 혹은 비판적 투사」,『오영진』 (한국극예술학회 편, 연극과 인간, 2010)
유민영, 『한국현대희곡사』 (새미, 1997)
이경훈 역, 『유머로서의 유물론』 (가라타니 고진, 문화과학사, 2002)
한국극예술학회 편, 『오영진』 (연극과 인간, 2010)

논문

권오만, 「오영진의 3부작에 대하여」 (『국어교육』, 18~20합병, 1972)
김남석, 「시나리오 '시집가는 날'의 영상미학연구」 (『영주어문』 8, 영주어문학회, 2004)
김윤미, 『오영진 극문학에 나타난 ‘민족’ 표상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최승연, 『「맹진사댁」의 각색 양상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주석
주13

혼인에 대하여 오가는 말. 우리말샘

주14

어떤 지방의 자연이나 풍속, 인정 따위가 갖는 고유한 특색. 우리말샘

주15

올바르지 않은 예전의 풍습을 그대로 따르거나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 우리말샘

주16

일본어로 쓴 글. 우리말샘

주17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원료 공급지, 상품 시장, 자본 수출지의 기능을 하며, 정치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우리말샘

주18

바르게 전하여 오는 전기(傳記). 우리말샘

주19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 주는 신인 동신(洞神)에게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정월 대보름날에 서낭당, 산신당, 당산(堂山) 따위에서 지낸다. 우리말샘

주20

탈을 쓰고 추는 춤. 우리말샘

주21

연극 작품으로서의 예술성. 우리말샘

주22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우리말샘

주23

문서의 초고(草稿). 우리말샘

주24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국립 예술 극장. 1936년에 일본인을 위한 위락 시설로 설립된 명치좌(明治座)가 그 전신이며, 1975년 정부가 건물을 매각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문화 관광부에서 땅과 건물을 매입하고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09년에 현재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명치좌 시절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외관은 옛 모습 그대로 두고 내부만 새롭게 꾸몄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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