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정인하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215번지 출생하였다. 언론계에 종사하던 부친 정홍조와 모친 이규승의 사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들은 정치나 의학, 법학도가 되기를 바랐지만 예술에 뜻을 두었던 그는 1935년 9세 때, 우연히 한성준 조선무용연구소를 구경하러 갔다가 약 8년간 그의 춤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러나 부친의 강력한 제지로 춤을 그만 두고 일본 고등공업학교에 편입한다. 그곳에서도 춤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제자인 스지렌꼬에게 현대무용의 기본을 배우다가, 1944년 12월 일본 정부의 한국인 강제 추방령으로 인해 귀국길에 올랐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1945년 서울 부민관에서 제1회 무용발표회를 열었고, 이후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며 제자를 양성하고, 활발한 공연을 통해 다수의 신작들을 발표했다. 1949년 그의 제자인 오기봉과 결혼한 후 딸 하나를 낳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인민 협주단에 편승했으나, 유랑생활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몰래 빠져나왔다. 이후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1961년 정인방 무용생활 25주년 기념공연, 1967년 정인방 무용단 송년공연, 1968년 일본·대만·홍콩 순회공연 등을 통해 한국의 민속무용을 소개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1982년 6월 시립무용단 명무전에서 그의 대표작인 「신로심불로」를 공연한 후, 2년이 지난 1984년 5월 사망했다.
1974년 재일교포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