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촉(西蜀). 하(夏)나라 왕 옥진(玉珍)의 아들이다.
명나라 태조(太祖)가 하를 멸망시키자 항복하여 귀의후(歸義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1372년(공민왕 21) 5월에 명나라 태조에 의하여 한주(漢主) 진우량(陳友諒)의 아들 진이(陳理)와 함께 남녀 27인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화하자 같은 해 6월에 왕은 이들에게 저포(苧布) 9필을 하사하였다.
이듬해 총랑(摠郎) 윤희종(尹熙宗)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이후 개경(開京)에서 살았다. 조선이 개창되자 왕족으로서의 예우를 받았으며, 태종 때는 화촉군(華蜀君)에 봉해지고 충훈세록(忠勳世錄)이 하사되었다. 죽은 뒤 연안(延安)에 사당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