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0년(현종 11)에 관찰사 민정중(閔鼎重)이 지방유림의 건의에 따라 조헌(趙憲)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임명역 벌찬 동쪽에 중봉서원(重峯書院)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홍수로 묘우가 무너지게 되자 관찰사 남구만(南九萬)이 1674년에 벌찬 북쪽으로 이전하였으며, 1696년(숙종 22) ‘명천(溟川)’이라고 사액되어 명천서원으로 개칭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강당·신문(神門) 등이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