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년(세종 3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서 성내 동쪽에 창건되었다.
1853년(철종 4)에 서문 밖으로 이전하였으며, 당시 경내의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각 2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4칸의 명륜당, 각 2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4칸의 경신재(敬愼齋), 5칸의 양사재(養士齋), 3칸의 집성루(集成樓), 대문, 협문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광복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