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종성서원(鍾城書院)이라고도 한다. 1667년(현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준(奇遵)·유희춘(柳希春)·정엽(鄭曄)·조석윤(趙錫胤)·유계(兪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십주도회서원(十州都會書院)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669년에 정여창(鄭汝昌), 1684년(숙종 10)에 정홍익(鄭弘翼)을 추가 배향하였다. 지방유림이 회령서원(會寧書院)을 이 서원에 통합할 것을 건의하여 1686년 ‘종산(鍾山)’이라 사액되어 종산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회령서원에 봉안되었던 김상헌(金尙憲)과 정온(鄭蘊)을 추가 배향하였다.
그 뒤 다시 민정중(閔鼎重)과 남구만(南九萬)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훼철되기 전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신문(神門)·강당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