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달부(達夫), 호는 용제(容齋).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목첨(睦詹)이고, 아버지는 목서흠(睦敍欽)이며, 어머니는 증병조판서 권탁(權倬)의 딸이다. 목내선(睦來善)의 형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44년 참봉(參奉)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7년 지평을 거쳐, 1649년(효종 즉위년) 암행어사로 활약하였다.
1655년(효종 6) 다시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갔고, 이어서 수찬·헌납·이조좌랑·교리·부교리·부응교·사간·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효종 때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수찬·검상(檢詳)·부응교·사인(舍人)·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집의 때는 교지에 따라 차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수령들의 세 포탈과 궁가(宮家)의 전원의 남점(濫占)으로 인하여 궁노의 민가에까지 폐해를 끼치는 행위를 시정할 것, 그리고 서북에 있는 관리들은 각사노비(各司奴婢)의 도망자를 명백히 보고할 것, 피죄된 관리들에게도 다시 벼슬 길에 오르는 기회를 빨리 열어줄 것 등이다.
또한, 공전(公田)에 개인 집을 짓는 것이라든가 도성 밖의 도로에 수근전(水芹田)을 만들어 도로를 점령, 단절시키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소를 올려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661년 사인·집의·수찬을 지내고, 1664년 동부승지·첨지(僉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