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룡 ()

목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관리.
이칭
이칭
동성군(東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4년(숙종 10)
사망 연도
1724년(영조 즉위년)
본관
사천(泗川)
주요 관직
동지중추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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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참판 목진공(睦進恭)의 후손이며, 남인(南人)의 서얼(庶孽)이다.

내용

일찍이 종실인 청릉군(靑陵君)의 가동(家僮)으로 있으면서 풍수술(風水術)을 배워 지사(地師)가 되었다.

처음은 노론인 김용택(金龍澤)·이천기(李天紀)·이기지(李器之) 등과 왕세제(王世弟: 영조)를 보호하는 편이었으나,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 등의 소(疏)로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실각하여 유배되고 소론정권이 들어서자, 다음 해인 1722년 소론편에 가담하여 경종을 시해하려는 모의가 있었다는 이른바 삼급수설(三急手說)을 고변(告變)하였다.

이 고변으로 인하여 역모(逆謀)로 지목된 60여 명이 처벌되는 옥사가 일어나고, 건저(建儲) 4대신(四大臣)인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이 사형되는 신임사화가 있었다. 목호룡은 고변의 공으로 부사공신(扶社功臣) 3등으로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그 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의 상소로 신임사화는 무고로 일어난 것임이 밝혀지자, 김일경과 함께 붙잡혀 옥중에서 급사하였다. 죽은 뒤 당고개(唐古介)에서 효수되었다.

참고문헌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당의통략(黨議通略)』
『약파만록(藥坡漫錄)』
『대사편년(大事編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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