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룡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관리.
이칭
  • 이칭동성군(東城君)
인물/전통 인물
  • 본관사천(泗川)
  • 사망 연도1724년(영조 즉위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684년(숙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관리.

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참판 목진공(睦進恭)의 후손이며, 남인(南人)의 서얼(庶孽)이다.

내용

일찍이 종실인 청릉군(靑陵君)의 가동(家僮)으로 있으면서 풍수술(風水術)을 배워 지사(地師)가 되었다.

처음은 노론인 김용택(金龍澤)·이천기(李天紀)·이기지(李器之) 등과 왕세제(王世弟: 영조)를 보호하는 편이었으나, 1721년(경종 1) 김일경(金一鏡) 등의 소(疏)로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실각하여 유배되고 소론정권이 들어서자, 다음 해인 1722년 소론편에 가담하여 경종을 시해하려는 모의가 있었다는 이른바 삼급수설(三急手說)을 고변(告變)하였다.

이 고변으로 인하여 역모(逆謀)로 지목된 60여 명이 처벌되는 옥사가 일어나고, 건저(建儲) 4대신(四大臣)인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이 사형되는 신임사화가 있었다. 목호룡은 고변의 공으로 부사공신(扶社功臣) 3등으로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그 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의 상소로 신임사화는 무고로 일어난 것임이 밝혀지자, 김일경과 함께 붙잡혀 옥중에서 급사하였다. 죽은 뒤 당고개(唐古介)에서 효수되었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당의통략(黨議通略)』

  • - 『약파만록(藥坡漫錄)』

  • - 『대사편년(大事編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