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묘당도는 고금도에 딸린 섬으로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8일 이순신이 수군 8,000여명을 이끌고 고하도(高下島)에서 이곳으로 옮겨 진을 쳤다.
그 해 7월 16일 명나라의 원병으로 수군도독 진린(陳璘)이 병선 500여척으로 고금도에 도착, 묘당도에 진을 치고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전선을 이루어 왜적의 침범을 막아냈던 유적지이다.
이순신이 고금도에 진을 치고 있던 8월 18일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었다. 그러나 조선과 명군은 이를 알지 못하였으며 다만 왜군이 철수하려 한다는 것만 알았다. 이에 연합군은 고금도를 떠나 좌수영 방면으로 이동했는데, 이순신이 이곳에 진을 치고 머무른 기간은 약 7개월 정도에 이른다.
묘당도에는 이순신을 모신 사당 충무사(忠武祠)가 있고, 인근에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이 위치하고 있다.
충무사 경내에는 이순신의 영당(影堂)과 1713년(숙종 39)에 세운 사적비가 있으며, 명나라 수장(水將)이 이순신의 전사를 애석하게 여겨 서혈(誓血)하고 귀국하였다는 내용의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