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항일기인 1939년에 제작, 공개된 영화이다. 원작은 이광수의 초기 대표작으로 알려진 장편소설이고, 박기채는 1935년 「춘풍(春風)」으로 데뷔한 인물이다.
이 영화는 한말 개화기 무렵에 항일애국지사로서 옥사한 박진사(朴進士)의 딸 영채(한은진 분), 박진사를 존경하는 가정교사 이형식(이금룡 분), 그리고 김장로(金長老)의 딸 선형(김신재 분)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일제시대의 암흑 속에 살고 있는 이들 젊은이들은 당시의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고루한 봉건사회의 구습을 떨쳐버리고 근대정신에 눈떠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나라가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든 겨레에게 투철한 민족정신과 근대사상을 심어주고 과학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형식은 이러한 민족주의와 계몽주의사상에 불타는 청년으로서, 삼랑진의 수해 참상을 보고 나서 선형·병욱 등의 여성들에게 민족계몽활동에 나서도록 설득한다. 그는 또 영채와 선형과의 애정관계에 있어서도 훨씬 근대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점은 아버지 박진사의 옥사와 구습으로 인하여 소극적이고 숙명적인 여성형으로 묘사된 영채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무정」은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작품의 심층에는 짙은 민족주의와 계몽주의 정신이 깔려 있다. 1930년대 후반기의 우리나라 영화는 이러한 민족적 계몽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는데 「무정」 역시 그 중의 한 작품이다.
1907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기채는 일본의 도아(東亞)키네마에서 감독수업을 마쳤으며, 세련된 영화기법을 갖춘 재장(才匠)으로 「무정」은 그의 대표작이다. 한편, 이 작품은 조선영화주식회사 창립 제1회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