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야별초는 고려후기 최씨 정권의 최우 집권기에 조직된 군대로서 삼별초(三別抄)의 모체가 된 부대이다. 야별초는 처음에 나라 안의 도적을 막기 위해 조직되었지만, 집권 무신 세력의 권력 유지에 중요한 무력적 수단이 되었다. 이런 점은 야별초가 관군(官軍)이면서도 사병(私兵)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점차 확대되면서 좌별초(左別抄)와 우별초(右別抄)로 재편되었다가, 신의군(神義軍)이 조직되면서 삼별초가 되었다. 삼별초는 대몽 전쟁의 핵심 부대였고, 권력 변동에 중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의
고려후기 최씨 정권의 최우 집권기에 조직된 군대로서 삼별초(三別抄)의 모체가 된 부대.
제정 목적
내용
최씨 정권이 도방(都房) · 마별초(馬別抄) · 가병(家兵) 등 방대한 사병 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삼별초를 따로 조직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병은 최씨 정권을 지탱하는 데는 유익했지만 그 이외의 공적 활동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당시 고려의 정규군인 2군(軍)6위(衛)가 유명무실해져 국가적 차원에서도 비상 시기를 대처할 수 있는 전투 편제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비상 조직을 염두에 두고 창설한 부대가 야별초였고, 이후 확대된 것이 삼별초이다. 그러나 야별초가 중심이 된 삼별초는 1270년(원종 11) 본격적인 삼별초 항쟁 이전에는 대몽 전투나 국방보다 중앙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을 진압하고 향촌 사회를 지배하는 데 더 많이 동원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당택, 『고려무인정권연구』(새문사, 1987)
-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 홍승기 편, 『고려무인정권연구』(서강대학교 출판부, 1995)
논문
- 강재광, 「고려무인정권 말기 무신 송송례의 정변 참여와 무인정권 붕괴」(『한국중세사연구』68, 한국중세사학회, 2022)
- 김낙진, 「고려중기의 군직 ‘지유’와 ‘행수’」(『군사』10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6)
- 김상기, 「삼별초와 그의 난에 대하여」(『동방문화교류사논고』, 을유문화사, 1948)
- 김수미, 「고려무인정권기의 야별초」(『고려무인정권연구』,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5)
- 김윤곤, 「삼별초의 대몽항전과 지방 군현민」(『동양문화』20·21, 영남대학교 부설 동양문화연구소, 1981)
- 신안식, 「고려중기의 별초군」(『건대사학』7, 건국대학교 사학회, 1989)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