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무신정권의 최우집권기에 조직한 야별초(夜別抄)의 한 부대.
내용
야별초는 최씨정권의 사병(私兵)처럼 활용되기도 하였지만, 중앙의 치안 · 형옥(刑獄) 및 대몽전투, 국왕옹위, 수도경비 등 공적인 임무를 자주 수행하였기 때문에 관군(官軍)으로 보기도 한다. 근래 태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마도 3호선에서 나온 목간에 “우삼번별초도령시랑택상(右三番別抄都領侍郞宅上)”이라고 적힌 내용을 통해서, 우별초가 3번으로 세분화되어 있었고, 각 번의 최고 지휘관은 도령시랑, 곧 장군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좌별초도 3번으로 세분화되어 있었고 각 번을 장군이 최고 지휘관으로서 맡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야별초 조직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좌 · 우별초에 대몽전쟁 과정에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도망해온 자들로 편성된 신의군(神義軍)을 합하여 흔히 삼별초(三別抄)라 불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쟁』(윤용혁, 일지사, 2000)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고려무인정권연구』(김당택, 새문사, 1987)
- 「고려 원종 11년(1270) 삼별초항쟁의 배경」(신안식,『명지사론』13, 2002)
- 「고려무인정권기의 야별초」(김수미,『고려무인정권연구』,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5)
- 「별초군의 조직」(김윤곤,『한국사』18, 국사편찬위원회, 1993)
- 「최씨정권의 지배기구」(민병하,『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77)
- 「고려무인정치기구고」(김상기,『동방문화교류사논고』, 을유문화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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