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마도 3호선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침몰선이다. 이 선박은 전라남도 여수 일대에서 거둔 각종 물자를 싣고 당시 임시수도였던 강화도를 향해 운항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남아 있는 배의 규모는 길이 12m, 너비 8m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밑바닥과 이물, 고물이 모두 평평한 평저선이다. 선박 내부에서는 45점의 도기, 62종의 금속 유물, 빗, 장기알 등 당대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 출수되었다. 목간을 통해 볼 때 마도 3호선의 침몰 연대는 1265~1268년 사이로 추정된다.
정의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침몰선.
형태와 제작 방식
내용
화물로는 볍씨와 보리·밤 등의 곡물과 대나무상자 안에 가득찬 생선뼈 등이 있다. 곡물과 함께 다량의 도기 항아리가 인양되었는데 그 안에는 젓갈류가 들어 있었다. 목간에는 상어[沙魚], 말린 홍합[乾淡], 전복 젓갈[鮑醢], 생전복[生鮑], 견포(犭脯) 등이 적혀 있다. 장기돌도 47점이 인양되었는데, 조약돌의 앞뒷면에 장군(將軍), 차(車), 포(包), 졸(卒) 등의 묵서가 있다. 청동 유물로는 대접, 접시, 합, 숟가락, 젓가락, 국자, 1054~1056년 사이에 주조된 지화통보(至和通寶) 등이 있다. 앞서 출수된 태안선과 마도 1~2호선보다 훨씬 많은 양의 청동용기가 발견된 셈이다. 숟가락은 9점이 출수되고, 젓가락은 4점(2쌍)만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배에 탄 사람 중 2명은 다른 뱃사람들보다는 지위가 높은 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출수된 씨앗과 대나무를 이어 만든 갓끈 장식[竹纓]도 그들이 썼던 갓 장식이었을 것이다.
목간에 적혀 있는 화물 수취인으로는 김영공(金令公)과 시랑(侍郞) 신윤화(辛允和) 및 유승제(兪承制) 등이 있다. 김영공은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아 1264년(원종 5)에는 교정별감(敎定別監)과 해양후(海陽候)에 책록된 김준(金俊)이다. 시랑 신윤화는 1260년(원종 원년)에 장군으로 몽골에 사신으로 다녀온 인물이며, 유승제는 원종 초 우부승선(右副承宣)의 직위에 있었던 유천우(兪千遇)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볼 때 마도 3호선은 강도에서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하기 직전인 1264년에서 1268년(원종 9) 사이에 전라도 여수 일대의 곡물과 공물 등을 싣고 서남해안을 따라 강화도로 향하다가 마도 인근에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보 2011』 (2012)
논문
- 임경희, 「마도 3호선 목간의 현황과 판독」 (『목간과 문자연구』 7, 한국목간학회, 2012)
기타 자료
- ‘800년전 고려인 참돔·넙치·전복·농게도 젓갈로 담가 먹었다’, 『동아일보』 (2012.5.9.)
- ‘고려시대 판도라상자 ‘마도3호’ 열렸다’, 『연합뉴스』 (2011.10.6.)
- ‘마도3호선 발굴성과 발표하는 성낙준 소장’, 『연합뉴스』 (2011.10.6.)
- ‘‘마도 3호선’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다’, 『아시아경제』 (2011.1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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