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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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개경에 설치되었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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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 개경에 설치되었던 창고.
내용

신흥창(新興倉)은 고려 고종대 최이(崔怡)의 측근이었던 박훤(朴暄)의 건의로 설치하였다. 박훤은 흉황(凶荒)을 대비하기 위해서 신흥창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신흥창의 덕을 본 백성들이 “박공(朴公, 박훤)이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당시 신흥창이 구휼기능을 수행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신흥창은 명칭으로 보아서 고려 전기에 있었던 운흥창(雲興倉)을 이어받은 창고로 그 기능과 위상이 운흥창과 비슷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흥창의 용례는 대부분 고종 대부터 충렬왕대에 걸쳐 보인지만, 『고려사』 세가에는 고려 전기인 1090년(선종 7년)에 신흥창의 화재 기록이 확인된다. 이 때의 신흥창은 고종대 박훤의 건의로 창건된 신흥창이 아니라 문종대 기록에 보이는 운흥창의 다른 이름이다. 선종의 휘가 운(運)이었기 때문에 선종 즉위 후 운흥창의 이름을 신흥창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려 전기의 운흥창과 고려 후기의 신흥창은 서로 다른 창고이지만 국용이나 구휼에 사용할 곡식을 보관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의 창고로 보인다. 한편 고려 후기 신흥창에는 곡식의 보관 외에도, 은 그릇, 토지와 경작자[田民]가 소속되기도 하였는데, 이런 경향은 고려 후기 다른 창고에서도 확인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전기의 재정구조』(안병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고려시기 재정운영과 조세제도』(박종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고려시대의 경창(京倉)」(김재명, 『청계사학』 4, 청계사학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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