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무학대사(1327∼1405)의 탑비로서 1410년(태종 10) 왕명에 따라 변계량(卞季良)의 글과 공부(孔俯)의 글씨로 세워졌으나 1821년(순조 21) 인위적인 파괴로 말미암아 뒤에 다시 세워졌다. 197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그가 고려 공민왕 때 연경(燕京)에 가서 지공대사(指空大師)를 찾아 법을 구하고, 이어서 법천사(法天寺)에 가 있는 나옹선사(懶翁禪師)를 만나보고 제자가 된 일, 태조의 부름을 받아 왕사가 되어 한양 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승으로 속성은 박(朴), 이름은 자초(自超)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고 용문산(龍門山)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妙香山)에서 수도하였다. 연경에 다녀 온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金剛山) 금장암(金藏庵)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4각 하대석(下臺石) 위에 비신을 놓고 장방형의 비개석(碑蓋石)을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