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무한한인혁명청년회라고도 한다. 진공목(陳公木)·진갑수(陳甲壽)·안재환(安載煥)·김영재(金英哉)·박시창(朴始昌)·송욱동(宋旭東)·장기준(莊驥俊)·권준(權晙)·홍의표(洪義杓)·노세방(蘆世芳)·전창무(田昌武)·백득림(白得林) 등 10여 명이 중국혁명군의 사기충전에 따라 1924년 9월 24일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군관학교생과 중국군대의 기술교관으로 있었던 청년들이었다. 1924년 9월 초 중국국민혁명군이 우한(武漢)을 회복하고 우창에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우한분교를 설치함으로써, 한국학생 다수가 입교하여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북벌에도 참가하였다.
한국인 장교와 각처에서 찾아온 한국혁명자들이 일시 이곳에 운집하여 일대혁명세력의 중심지가 됨으로써 한국인들은 독립혁명의 성공을 위하여 항일결사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절대적 후원을 손문(孫文)에게 호소하는 한편, 전시훈련과 함께 중국 일대에서의 항일투쟁을 과감히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이 혁명청년회에 가담할 것을 호소하였다. 더욱이, 이들은 광복투쟁 선전에 열중하면서 국내외동포들의 동참과 지지, 찬성을 절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