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거창현감, 창원부사, 김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평(南平,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522년(중종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거창현감|창원부사|김해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거창현감, 창원부사, 김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평(南平). 문전(文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문승욱(文承郁)이고, 아버지는 문극충(文克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연산군 10) 별시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거창현감·창원부사·김해부사·승문원교감(承文院校勘)·제주목사·함양군수를 지내고, 풍기군수를 마지막으로 임지에서 죽었다.

1511년(중종 6) 5월 창원부사 김협(金恊)이 민치(民治)에는 뛰어나나 궁마(弓馬)를 알지 못하여 효과적으로 적을 막지 못할 것이라 하여 무재(武才)가 있는 문신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에 당상(堂上) 및 내지 수령(內地守令)에 구애받지 말고 널리 후보자를 선택하라는 왕의 특명이 있어, 이자화(李自華)·신공제(申公濟)·이포(李苞)·구지신(具之愼)·조순(趙舜) 등과 더불어 물망에 올랐다.

당시 거창현감으로 있던 문계창은 당상관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무재가 있는데다가 일찍이 왜구를 물리친 공이 있었다. 그리하여 성희안(成希顔)의 천거로 5등급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 창원부사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생원으로 있을 때 관문을 출입하며 권문(權門)에 아부한 허물이 있고 5등급을 뛰어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대간의 강경한 탄핵을 받아, 임명된 지 겨우 한 달만에 체직되고 말았다. 무재는 있지만 몸가짐이 근실하지 못하다는 대간의 탄핵은 이때뿐만이 아니었다. 김해부사로 부임했을 때와 1517년 12월 제주목사로 임명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권문에 아부했다고 지탄을 받은 것은 함양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조광조(趙光祖)의 실각으로 선배 이항(李沆)이 경상좌도감사에서 대사헌으로 영전하게 되자 아첨에 찬 시를 지어 작별의 인사를 한 일 때문이었다. 이항은 그 뒤 사류(士類)를 모함하고 해치는 데 남은 힘을 다했다는 비난이『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실려 있어 주목되며, 이를 암시하는 기록이 실록의 졸거 기사(卒去記事)에도 보인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