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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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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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 왕조의 문신들에게 주던 관계(官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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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및 조선 왕조의 문신들에게 주던 관계(官階).
내용

우리나라에서 중국식 문·무산계(文武散階)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제도화된 것은 995년(고려 성종 14)이었다. 문·무산계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신라와 태봉의 관계를 참작해 만든 고려의 관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당(唐)나라의 문·무산계가 도입되자, 고려의 토착 관계는 향직(鄕職)으로 개편되어 향리를 비롯한 여진추장(女眞酋長)·군인·무산계(武散階) 소지자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서서히 소멸되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문·무산계가 유일한 관계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의 무산계는 제대로 쓰이지 않고 문산계만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하면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문·무산계에 바탕을 둔 고려의 양반 제도도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조선 건국과 더불어 어느 정도 균형있게 정비되었다. 물론 1392년(태조 1) 7월에 제정된 이 조선식 문·무산계는 고려시대의 관계 조직을 계승, 개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고려 최후의 문산계와 1392년의 문산계를 대비하면 [표 1]과 같다.

[표 1] 고려말 조선초의 문산계 비교표

품계 1369년(공민왕 18) 1392년(태조 1)
정1품(正一品) 특진보국삼중대광(特進輔國三重大匡)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
특진삼중대광(特進三重大匡)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종1품(從一品) 삼중대광(三重大匡) 숭록대부(崇祿大夫)
중대광(重大匡) 숭정대부(崇政大夫)
정2품(正二品) 광록대부(光祿大夫) 정헌대부(正憲大夫)
숭록대부(崇祿大夫) 자헌대부(資憲大夫)
종2품(從二品) 영록대부(榮祿大夫) 가정대부(嘉靖大夫)
자덕대부(資德大夫) 가선대부(嘉善大夫)
정3품(正三品) 정의대부(正議大夫) 통정대부(通政大夫)
통의대부(通議大夫) 통훈대부(通訓大夫)
종3품(從三品) 대중대부(大中大夫) 중직대부(中直大夫)
중정대부(中正大夫) 중훈대부(中訓大夫)
정4품(正四品) 중산대부(中散大夫) 봉정대부(奉正大夫)
중의대부(中議大夫) 봉렬대부(奉列大夫)
종4품(從四品) 조산대부(朝散大夫) 조산대부
조렬대부(朝列大夫) 조봉대부(朝奉大夫)
정5품(正五品) 조의랑(朝議郞) 통덕랑(通德郞)
통선랑(通善郞)
종5품(從五品) 조봉랑(朝奉郞) 봉직랑(奉直郞)
봉훈랑(奉訓郞)
정6품(正六品) 조청랑(朝請郞) 승의랑(承議郞)
승훈랑(承訓郞)
종6품(從六品) 선덕랑(宣德郞) 선교랑(宣敎郞)
선무랑(宣務郞)
정7품(正七品) 수직랑(修職郞) 무공랑(務功郞)
종7품(從七品) 계공랑(啓功郞)
정8품(正八品) 승사랑(承事郞) 통사랑(通仕郞)
종8품(從八品) 승사랑(承仕郞)
정9품(正九品) 등사랑(登仕郞) 종사랑(從仕郞)
종9품(從九品) 장사랑(將仕郞)

[표 1]에서 보면 1392년(태조 1) 새로 제정된 조선의 문산계는 5품 이하의 정품·종품을 구분하고, 5·6품의 단계(單階)를 쌍계(雙階)로 바꾼 것 이외 명칭만 달라졌을 뿐이다. 대개는 1369년(공민왕 18)에 제정된 문산계와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다.

당제(唐制)를 모방해 제정한 고려 문종 때의 문산계에서는 5품 이상을 대부(大夫), 6품 이하를 낭(郎)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다가 충선왕 후즉위년(後卽位年, 1308)에 개정된 문산계부터 4품 이상을 대부, 5품 이하를 낭으로 구분하고, 1392년의 문산계에서도 이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문종 때의 문산계에 없던 정1품계가 신설된 것도 1308년(충렬왕 34)부터이다.

한편 향직의 마지막 유제(遺制)인 대광(大匡)이 1392년의 문산계명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관계 조직이 고려의 관계 조직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토착 관계인 향직계(鄕職階)를 완전히 청산한 명실상부한 단일 관계로 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국대전(經國大典)』 문산계의 정1품계에는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가 새로운 관계명으로 부활되었다. 이것은 5품 이하의 낭품계(郎品階)를 단계에서 쌍계를 세분한 것과 함께 조선시대 관계 조직의 중요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세종 때에 이르러 지배 구조 내 왕실의 근친인 종친들과 왕실의 사위인 부마(駙馬)들에 대한 우대를 위해 문산계 안에 문신계(文臣階)와는 별도로 1443년(세종 25) 11월 종친계(宗親階)와 1444년(세종 26) 7월 의빈계(儀賓階)가 신설되었다. 이렇게 세 가지로 갈라진 문산계는 『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다만, 정1품 산계명만이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문산계명은 [표 2]와 같다.

[표 2] 조선시대 문산계표

품계 문산계
문관 종친 의빈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현록대부(顯祿大夫) 수록대부(綏祿大夫)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흥록대부(興祿大夫) 성록대부(成祿大夫)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 소덕대부(昭德大夫) 광덕대부(光德大夫)
숭정대부(崇政大夫) 가덕대부(嘉德大夫) 숭덕대부(崇德大夫)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 숭덕대부(崇憲大夫) 봉헌대부(奉憲大夫)
자헌대부(資憲大夫) 승헌대부(承憲大夫) 통헌대부(通憲大夫)
종2품 가정대부(嘉靖大夫) 중의대부(中義大夫) 자의대부(資義大夫)
가선대부(嘉善大夫) 정의대부(正義大夫) 순의대부(順義大夫)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명선대부(明善大夫) 봉순대부(奉順大夫)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창선대부(彰善大夫) 정순대부(正順大夫)
종3품 중직대부(中直大夫) 보신대부(保信大夫) 명신대부(明信大夫)
중훈대부(中訓大夫) 자신대부(資信大夫) 돈신대부(敦信大夫)
정4품 봉정대부(奉正大夫) 선휘대부(宣徽大夫)  
봉렬대부(奉列大夫) 광휘대부(廣徽大夫)  
종4품 조산대부(朝散大夫) 봉성대부(奉成大夫)  
조봉대부(朝奉大夫) 광성대부(光成大夫)  
정5품 통덕랑(通德郞) 통직랑(通直郞)  
통선랑(通善郞) 병직랑(秉直郞)  
종5품 봉직랑(奉直郞) 근절랑(謹節郞)  
봉훈랑(奉訓郞) 신절랑(愼節郞)  
정6품 승의랑(承議郞) 집순랑(執順郞)  
승훈랑(承訓郞) 종순랑(從順郞)  
종6품 선교랑(宣敎郞)    
선무랑(宣務郞)    
정7품 선공랑(務功郞)    
종7품 계공랑(啓功郞)    
정8품 통사랑(通仕郞)    
종8품 승사랑(承仕郞)    
정9품 종사랑(從仕郞)    
종9품 장사랑(將仕郞)    
자료 : 『경국대전』

그런데 조선시대의 관계 조직은 사회 신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직종(職種)에 따라 신분과 한품(限品)이 달랐고, 반대로 신분에 따라 직종과 한품이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의 문·무산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 18자급(資級)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여기에 다시 당상관(堂上官 : 정3품인 通政大夫 이상)과 당하관(堂下官 : 정3품인 통훈대부 이하), 참상관(參上官 : 종6품인 선무랑 이상)과 참하관(參下官 : 정7품인 무공랑 이하)의 구분이 있었다. 한편, 4품과 5품 사이에도 또 다른 하나의 구분이 있었다. 종4품 이상을 대부·장군(將軍)이라 하고, 정5품 이하를 낭(郎)·교위(校尉)라 한 구분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에 아무런 한품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정1품까지 올라갈 수 있는 신분은 양반 뿐이었다. 그 이외 정3품 당하관이 한품인 직종 및 신분은 기술관·서얼(庶孼), 정5품이 한품인 직종 및 신분은 토관(土官)과 향리(鄕吏), 정7품 참하관이 한품인 직종과 신분은 서리(胥吏) 및 기타 관리였다. 이러한 직종 및 신분에 따른 한품을 도표로 그려보면 [표 3]과 같다.

[표 3] 신분·직종에 따른 한품서용표

품계 문산계 한품서선(限品敍線) 양반 기술관·서얼 토관·향리 서리·기타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

       
종3품          
정4품          
종4품 조봉대부(朝奉大夫)        
정5품 통덕랑(通德郞)

       
종5품          
정6품          
종6품 선무랑(宣務郞)        
정7품 무공랑(務功郞)

       
종7품          
정8품          
종8품          
정9품          
종9품 장사랑(將仕郞)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양반연구』(이성무, 일조각, 1980)
「朝鮮初期の文武散階」(李成茂, 『朝鮮學報』102, 1982)
「高麗時代の官階」(武田幸男, 『朝鮮學報』41, 1966)
「高麗時代の鄕職」(武田幸男, 『東洋學報』47-2, 1964)
「高麗初期の兩班について」(末松保和, 『東洋學報』36-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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