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공부상서, 추밀원부사, 우복야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거란의 유민들이 쳐들어오자 인근지역 군사를 지휘하여, 위주성(渭州城) 밖에서 적을 대파하는 공을 세웠다. 1217년 11월 거란이 다시 고주(高州)·화주(和州) 등 동계지역(東界地域)으로 쳐들어오자 상장군으로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가 되어 대장군 유돈식(柳敦植)·기윤위(奇允偉) 등과 함께 출정하였다.
적들이 동계로 마구 쳐들어왔는데도, 의주(宜州)에 병력을 모아놓고 체류하며 싸우지 않고 온갖 장인(匠人)을 모아 군영(軍營) 안에서 사물(私物)을 만들게 하며 사소한 이익[錐刀]까지 탐하다가, 적의 포위를 당하여 성을 버리고 도망하여 패배를 자초하였다. 이로 인하여 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 다시 복직되어 병부와 공부의 상서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우복야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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