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숙도(叔道), 호는 역암(櫟菴). 민해(閔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민사건(閔師騫)이고, 아버지는 우부승지 민원(閔源)이며, 어머니는 정숙돈(鄭叔墩)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독서에 힘써 약관으로 사마시에 급제하면서 문명을 크게 떨쳤다.
1535년(중종 30) 진우(陳宇)·유경인(柳敬仁) 등과 당시의 권신 김안로(金安老)를 비방하다 덕산에 장류되었다. 1540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병조정랑을 거쳐 1547년(명종 2) 훈련원도사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기(李芑)·윤원형(尹元衡) 등에 거슬려 봉성군(鳳城君)의 옥사에 연루됨으로써 오랫동안 임천(林川)에 부처되었다.
윤원형이 물러난 1565년에야 직첩이 환급되어, 이듬해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제수되었다. 그 뒤 선조가 즉위하자 홍문관전한·직제학을 거쳐 승정원으로 옮겨 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였다. 선조 때 대사성에 이르렀고, 1874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얼마 뒤 좌승지로 돌아오다가 개성에 이르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