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홍문관전한, 직제학,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숙도(叔道)
  • 역암(櫟菴)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574년(선조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홍문관전한|직제학|우부승지
  • 출생 연도1511년(중종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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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전한, 직제학,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숙도(叔道), 호는 역암(櫟菴). 민해(閔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청도관찰사 민사건(閔師騫)이고, 아버지는 우부승지 민원(閔源)이며, 어머니는 정숙돈(鄭叔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독서에 힘써 약관으로 사마시에 급제하면서 문명을 크게 떨쳤다.

1535년(중종 30) 진우(陳宇)·유경인(柳敬仁) 등과 당시의 권신 김안로(金安老)를 비방하다 덕산에 장류되었다. 1540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병조정랑을 거쳐 1547년(명종 2) 훈련원도사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기(李芑)·윤원형(尹元衡) 등에 거슬려 봉성군(鳳城君)의 옥사에 연루됨으로써 오랫동안 임천(林川)에 부처되었다.

윤원형이 물러난 1565년에야 직첩이 환급되어, 이듬해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제수되었다. 그 뒤 선조가 즉위하자 홍문관전한·직제학을 거쳐 승정원으로 옮겨 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였다. 선조 때 대사성에 이르렀고, 1874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얼마 뒤 좌승지로 돌아오다가 개성에 이르러 죽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음집(淸陰集)』

  • - 『기사전문록(己巳傳文錄)』

  • - 『백헌집(白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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