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납석으로 제작된 사리호는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안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리호는 납석으로 만들었고 기물의 표면 전체에는 흑칠을 하였다. 외형은 구연부가 넓고 어깨 부분이 부풀어졌다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어깨 부분은 띠를 두르듯 공간을 만들고 문양을 장식하였다. 도굴 당시 입은 피해로 일부가 손상된 상태이며, 완형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몸체 외면에 가로와 세로로 칸을 구획하고 7자 38행의 글자를 음각하여, 사리구의 제작 유래를 기록한 점에서 중요하다.
명문을 보면, 사리호는 신라 민애왕(재위 838∼839)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석탑과 연관이 있고 조성시기가 경문왕 때인 863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민애왕은 희강왕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왕위를 찬탈하여, 희강왕의 손자가 되는 경문왕과는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경문왕이 민애왕의 원탑을 세우고 사리구를 봉안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9세기 후반 신라는 왕위계승 쟁탈로 인해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실의 단합을 강화하고 왕권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경문왕이 적대적 가계와의 화해를 모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납석을 재료로 이용하거나 항아리 형태를 갖춘 사리호의 제작은 8세기 후반 이후 크게 늘어난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호는 통일신라 후기 사리구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조성 연유에 대한 자세한 명문이 기록되었다. 신라 하대 왕실 문화와 불교 공예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