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여명(汝明). 민영(閔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민응협(閔應協)이고, 아버지는 남인의 거두였던 우의정 민암(閔黯)이며, 어머니는 참판 김시진(金始振)의 딸이다.
1679년(숙종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91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93년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 1694년 사헌부지평·경기도사(京畿都事)가 되었다. 이때 1689년의 기사환국으로 실세한 서인들은 폐비민씨의 복위를 통한 재기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민암은 1694년 4월 아들 민장도를 시켜 그들의 조직과 계획을 탐지하게 하여 주동자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 수십인을 체포하여 국문(鞫問)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희빈(張禧嬪)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고 있던 숙종은 갑자기 국문을 중지시키고, 도리어 민암을 비롯한 남인들을 화(禍)를 꾸민 죄로 처단하였다. 이리하여 남인들이 조정에서 축출되고 서인들이 재집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갑술환국이다. 이때 아버지 민암과 함께 국문 도중 장독으로 졸하였다.